['파탄' 지방공기업 ②] 문어발 확장... 술 제조·판매까지

골프장 추진에 혈세 낭비... 페트병 수돗물 판매도 시도

등록 2015.07.21 08:17수정 2015.07.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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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16일 오후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열린 2014 제스피·재즈 페스티벌을 찾은 사람들이 제주도개발공사가 만든 밀맥주 '바이젠'을 시음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6일 오후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열린 2014 제스피·재즈 페스티벌을 찾은 사람들이 제주도개발공사가 만든 밀맥주 '바이젠'을 시음하고 있다.연합뉴스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방공기업이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고,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민간영역을 침해하고 있다. 현행 법률을 위반한 채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 파는 사업까지 추진하다가 민간의 반발을 샀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 유공자 등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려다 보니 실정법은 안중에도 없다. 지방공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탓에 경쟁력이 약한 지방 민간 경제는 더욱 위축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경제 발전이라는 단체장들의 공약은 허언인 셈이다. 행자부는 무분별한 사업영역의 확장을 막기 위해 '시장성 테스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제주개발공사 맥주 제조·판매

제주도의 지방공기업인 제주개발공사는 2013년 7월 24일 제주 지하수와 제주산 보리로 만든 프리미엄 맥주인 '제스피'(Jespi)를 출시했다.

필스너, 페일에일, 스트롱에일, 스타우트, 라거 등 5종의 제스피 생맥주는 350㎖들이 1잔 4천원, 500㎖들이 1잔 6천원에 판매된다. 병맥주도 만들었으나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제스피는 전분 등 기타 첨가물 없이 제주산 맥아를 100% 사용한다. 진하고 구수한 정통 유럽 스타일의 맥주 맛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 인근의 옛 신제주종합시장 건물 1층에 마련한 150석 규모 전용매장(500㎡)에서 열린 출시행사에는 450여 명의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현재까지 이 매장은 성업중이다. 월평균 5천7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올해 2월까지 누적 매출액이 13억7천만원에 달한다.


제주개발공사는 2011년 7월 시제품 개발용 맥주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를 취득했다.

정부의 규제개혁을 노린 성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각 분야의 진입규제가 시장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고 국가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며 주류제조업체의 면허 장벽을 낮췄다.


주류생산시설 용량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소주와 맥주 등 대중주의 제조시설 기준이 과도해 소주 10개사, 맥주 2개사 등 대기업만 혜택을 본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지방 공기업이 맥주시장을 선점하고 나서 중소 민간업체의 진입은 되레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개발공사는 지난해 4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를 생산하는 브루클린사와 자본금 40억원 규모의 합작회사인 제주맥주주식회사(Jeju Brewing Company, Limited)를 설립하기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출자지분은 브루클린사 51%, 개발공사 36.5%, 도민주 공모 12.5%이다.

제주도의회는 이 사업에 난색을 보였다. 매출 및 손익분석 신빙성 결여, 사업 타당성 등에서 문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 사업은 지방선거가 끝나고 사장이 바뀌면서 불공정 협약을 이유로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제주개발공사 양해석 사업총괄은 프리미엄 맥주 '제스피'에 대해 "제주를 알리기 위해 개발한 하나의 아이콘"이라며 "장기적으로 제스피 판매를 사회적기업이나 저소득층에 넘기고 순수하게 맥주만 공급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시·경북도개발공사 골프장 운영

부산시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골프경기를 위해 건설한 아시아드컨트리클럽을 사실상 공기업 형태로 운영한다.

부산시는 아시아드컨트리클럽의 지분 48%(72억원)를 갖고 있다. 이는 공기업법을 위반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출자기관이 민간영역인 골프장사업(회원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 부실도 심각해 12년 연속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감사원은 부산시에 아시아드컨트리클럽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4차례 요구한 바 있다.

부산시는 2008년 민영화 계획을 세우고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을 부산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실패했다. 시의회가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의 지방공기업인 경북도개발공사는 수백억원을 빌려 무리하게 골프장 사업을 추진하다 결국 포기해 혈세만 낭비했다.

경북도개발공사는 2005년 용역에서 18홀 골프장은 사업 타당성이 낮아 9홀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에 다시 용역을 실시해 18홀이 9홀에 비해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어 사업 타당성 분석에 대한 투자심의위원회 심의도 없이 300억원을 차입해 18홀 대중골프장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2005년 용역 결과와 상반되는 2007년 용역 결과는 신뢰성과 적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북도개발공사는 6년여 동안 착공조차 못 하다가 재무건전성 악화 등을 이유로 경영개선명령을 받고 이 사업을 포기했다.

2013년 부지를 매각할 때는 감정평가액 215억원보다 낮은 194억원에 팔아 손해를 봤다. 그동안 차입금 이자로만 33억8천여만원을 낭비했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병입 수돗물 판매 추진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파는 소위 '수돗물 유상판매'를 추진했다. 이 때문에 민간 부문의 먹는 샘물 업계와 갈등이 커졌다.

부산시는 1999년 위탁 생산 방식을 통해 국내 최초로 병입 수돗물을 선보였다.

시는 작년 한 해에만 '순수 365'란 350㎖들이 병입 수돗물 202만병을 생산해 공공기관 주관 행사와 회의, 공익행사 등에 사용했다. 복지단체와 물 부족지역 등지에도 공급했다.

병입 수돗물 판매를 두 차례나 시도했지만, 환경부의 부정 입장과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했다.

시민단체는 "취·정수장 등 상수도시설을 만들 때 세금이 투입됐는데 수돗물을 돈을 받고 판다면 이중과세하는 격"이라며 유상판매를 반대했다.

환경부는 적법성과 공공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수돗물을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정책에 위배된다며 수돗물 유상판매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 수도법은 수돗물을 용기에 넣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시는 유상판매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돗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며 환경부에 법 개정을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병입 수돗물 판매는 서울시, 광주시, 대구시 등 다른 지자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무산된 사안이다.

행정자치부는 지방공기업 사업 중 민간경제를 위축시키는지를 판단할 수 '시장성 테스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방공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사례를 막으려는 조치다.

지방공기업에서 수행하는 사업에 대한 전수조사 후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단에서 사업별로 시장성 테스트를 실시해 부적정 사업으로 판단되면 민간 이양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방공기업의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도 사전 시장성 테스트 절차를 의무화하도록 할 방침이다.

(신정훈·김호천·최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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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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