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음반 판매량에 관한 1932년 이기세의 기사.
이준희
일각에서는 이러한 판매 성적을 고려해 <사의 찬미>를 한국 대중가요의 기점으로까지 평가하기도 하는데, 사실 <사의 찬미>보다 앞서 음반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대중가요는 1923년에 발매된 <이 풍진 세월(일명 희망가)>이다. 더구나, <사의 찬미>는 기존 외국 곡에 가사만 새로 붙인 노래인데, 그러한 작품은 <사의 찬미>보다 10년이 앞선 1916년에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화로 각광을 받던 신파극 주제가로 인기를 모은 <카추샤의 노래>이다.
여하튼, <사의 찬미>가 윤심덕이 자살을 결심하고 부른 유작이라는 화제로 인해 음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환기된 것은 사실이고,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사의 찬미>가 한국 대중문화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친 것도 틀림이 없다.
한때 금지곡의 대명사였던 <진주라 천리 길>은 <사의 찬미> 멜로디를 전주에 사용했고, <흘러간 화장초>라는 노래는 윤심덕과 <사의 찬미>를 가사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장미희와 임성민이 주연을 맡은 1991년 개봉 영화 <사의 찬미>는 흔치 않은 한국 음악 영화로 호평을 받았고, 최근에는 영화와는 또 다르게 윤심덕 이야기를 극화한 뮤지컬 <사의 찬미>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