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강 그대로의 강
박재범
어떤 사람들에게는 강이 그저 흘러 바다로 가는 물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이 되기도 하고, '세월'이 되기도 하고, '인생'이 되기도 하고,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이곳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강을 마주해야 길이 열립니다. 바로 천혜의 물길 섬진강입니다. 강의 이쪽은 경상도이고 저쪽은 전라도입니다. 남도 오백 리 세 개의 도와 열두 개 군을 지나며 이 땅의 아픈 역사를 아우르고 흐르는 섬진강.
강은 늘 경계이면서도 분리가 아니라 이음이며 소통이어서 아름답습니다. 섬진강의 물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섬진강에 이르면 이 강과 함께 인생을 흘러온 한 사람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섬진강에서 살며 그 강과의 교감으로 삶을 보고 깨닫고, 그것을 시로, 가르침으로 펼치다가 이제 노년에 접어든 강 같은 시인 김용택.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고갯짓을 바라보며 /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1〉(『섬진강』, 창비, 1985.) 중에서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물한 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직기간 동안 고향인 임실 덕치초등학교와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임실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삶 곁에서 언제나 섬진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섬진강이 '나를 키운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나이 50일 때의 자전적 고백에서도 그는 "내 문학은 그 강가 거기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고, 거기 그 강에 있을 것이다. 섬진강은 나의 전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강과 함께 흘러 온 삶과 시김용택의 시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의 시에는 인간 본연의 서정성이 강 밑 물길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가 아름다운 참 이유는 그렇게 흐르는 서정성 위에 강과 함께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 농투성이 민중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시편들마다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택의 시는 섬진강에서 씌어져 그 강을 닮아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서정이 흐르고, 동시에 섬진강이 휘감은 마을들의 사람살이의 감동과 슬픔이, 그리고 약자들의 아픔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물결의 힘과 그 강의 깊이로 함께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