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빙 입구, 개선문 탑슈바빙 개선문 탑
김홍섭
공간은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장 변화와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공간과 장소의 변화를 지적하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우리는 흔히 전화할 때 "너 어디야?"를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화 상대의 공간적 거리와 상태를 이해하고 나서야 더 잘 대화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유년시절의 고향과 초등학교 그리고 군대 시절, 유학 시절, 재수 시절 등과 같이 자신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의 시간과 공간은 오래 기억의 밑자락에서 솟아오르곤 한다.
우리들의 젊은 대학 시절에 읽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뵐(H. B¨oll)의 소설과 동명의 수필집에 소개된 슈바빙은 깊은 인상과 그리움의 도시였다. 뮌헨의 예술의 중심지인 슈바빙은 시 북쪽의 거리로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같은 곳이자, 우리나라의 대학로와 같은 곳이다. 슈바빙은 주변에 학생 주점이나 화랑뿐만 아니라 재즈 다방 등이 줄지어 있어서 예술가와 학생, 젊은이들이 자주 모이는 아지트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옛날부터 이런 자유의 전통이 길러져 있어서 히틀러 정권 밑에서의 레지스탕스도 완강했다 하며 릴케, 토마스 만, 스테판 게오르게, 토마스 울프, 루 살로메, 루트비히 토마, 기타 수많은 표현주의 시인들이 이곳에 거주했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이곳 음식점에서처럼 전람회와 시의 밤, 소설 낭독의 밤, 여류 작가의 밤 등이 매일 저녁 있는 곳은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과 발표가 전통이나 인습에 반기를 들고 행해지고 있는 곳이 슈바빙인 것 같다. 아무튼, 딱딱하고 관료적이고 친밀감이 적고 이론적이기만 한 독일의 다른 곳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슈바빙만은 생각할 때마다 시원한 바람같이 심신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곤 한다.다른 지구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남아 있는 인종적 편견이 이 구에만은 조금도 없었다.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친칭(Duzen)을 사용해서 얘기를 걸고 마지막 담배꽁초도 나누어 피우고 때로는 공짜로 점심을 먹고 유유히 달아나고.슈바빙 사람이 제대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남자는 언제나 스웨터 바람이고 여자는 넓은 검은 스커트에 검은 스웨터, 검은 양말, 검은 머릿수건, 길게 늘인 금발의 제복이었다. 누구나가 조금씩 더러운 옷을 입어서 여기서는 깨끗하거나 단정한 정식 옷은 우습게 보였었다." (전혜린의 <다시 나의 전설 슈바빙> 중에서) 잘 정돈된 독일의 거리와 차량은 독일의 정신과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듯하다. 인접한 체코, 헝가리와 비교되는 느낌과 풍경을 보게 된다. 풍성하게 자라 하늘까지 솟은 숲들과 잘 구획된 토지와 거기에 색색으로 자란 농작물들, 거리의 요서에 자란 꽃과 야생화들이 어우러진 독일 도시들이다. 이번 여름 한 학회행사로 독일 뮌헨을 방문하게 되어 슈바빙을 방문하게 되었다.
젊은 날 읽은 한 권의 책으로 각인된 인상과 자유와 보헤미안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에는 슈바빙이란 많은 카페와 찻집이 유행하기도 했다. 슈바빙은 뮌헨대학과 인접해 있어 대학로같이 젊음과 자유가 느껴지는 거리며, 양면으로 높게 포플러가 자라 시원한 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