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기발한 졸업사진 촬영으로 인해 화제가 되는 의정부 고등학교의 2016년 졸업사진 촬영. 사진은 포카리스웨트 광고 패러디.
의정부고 방송부 페이스북
일본 드라마와 일본 만화는 유독 고교생들의 청춘물을 왕성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러브레터> 역시 그 고교시절이 주요한 소재로 쓰였던 걸 기억해 보라. 지난해 10월 방영된 드라마 <미안해 청춘!>은 일본의 유명 각본가 쿠도 칸쿠로의 작품으로, 고교 교사와 학생들 간의 건강한 교류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이 <미안해 청춘!>을 비롯해 일본 청춘물들이 주요하게 활용하는 소재가 바로 고교 문화제다. 우리의 학교별 '축제'에 해당하는 이 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싹트는 열정과 순수와 젊음의 기운을 각별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향수를 자극하는 과장이든 어른들의 시각에 입각한 판타지든, 대중문화가 여전히 그런 문화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얼마간의 점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과장을 빼고서라도, 의정부고 학생들이 퍼포먼스는 그러한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하면 상황은 참혹하다. <상속자들>과 같은 고등학생 간의 계층화된 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브라운관에서 그나마 현실성을 띤 <학교> 시리즈의 주요 소재는 입시 경쟁과 계층 문제,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다.
배우 김희선이 고등학교로 갔던 <앵그리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시에 바쁜 고등학생들이 영화를 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영화 제작자들은 10대의 자화상을 반영하는 영화를 포기한 오래다. 우리 10대들은 대중문화를 통해서는 결코 자신들의 현실을 지켜볼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정부고 학생들의 퍼포먼스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바라보는 지금, 여기에 대한 건강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인 코멘트는, 10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재기발랄함 그 자체다.
더욱이 '공부 또 공부'를 부르짖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생한 것이라 더욱 더 소중하다.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은 훨씬 더 '스마트'하고 감각적이며 자기 표현욕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반영성을 지닌 콘텐츠가 없는 상황을 직접 자신들이 주연 배우가 돼서 근사한 퍼포먼스를 일궈냈다는 점 하나만으로 의정부고 학생들의 퍼포먼스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재를 뿌리는 소식이 우려를 던져주기도 한다. 14일 오후 의정부고의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자 한 '일간베스트' 사용자가 국방부, 교육부, 국정원 등에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것이 요지이며, '일베'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유독 고생이 많지만, 제발 아이들의 의견 개진만큼은 놓아두도록 하자. 의정부고의 건강한 퍼포먼스는 포토샵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 비하 사진이나 만드는 '일베'의 표현의 자유와는 비교할 것이 못되니까. 그래야만 내년 이맘때 신나는 퍼포먼스 사진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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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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