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빛초롱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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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사람들 앞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청계천은 이제 서울시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쉼터가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청계천을 걷다보면 마음에 여유가 돌아오는 듯하고, 도시의 열섬현상도 청계천으로 인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작년 겨울을 아름다운 빛들로 수놓았던 청계천 빛초롱 축제는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청계천이 원래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청계천은 1958년 복개되어 이후 고가도로가 세워진 도로로 바뀌었다. 이렇게 청계천이 콘크리트로 덮이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서울 도심으로 집중되는 교통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서울 중심부인 종로와 서울 동부인 마장동을 잇는 도로를 건설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청계고가도로는 자동차 통행을 원활히 함으로써 교통 체증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청계고가도로를 통해 이동하면 10개의 교차점을 신호대기 없이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계천 주변 도로는 동대문 시장과 청계천 상가를 잇는 하나의 동맥과도 같았다. 청계고가도로 밑의 공간은 상가를 찾은 손님들이 주차하는 주차장이 되었으며, 청계천 복개로는 청계천 곳곳에 물자를 신속하게 나르고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2000년대 초가 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대도시의 녹지 조성에 대한 담론들이 팽창하면서 청계천 복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공약으로 삼은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떠돌고는 있었지만 서울시장 후보들 중 누구도 감히 청계천 복원 사업을 공약으로 삼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큰 규모의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해야 할 뿐더러 청계천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수많은 상인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 대책을 보장할 경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야심차게 청계천 복원을 자신의 핵심공약 중 하나로 삼았고 당선 이후 발 빠르게 복원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신의 임기 5년 안에 청계천 복원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것으로 보인다. 당선된 직후부터 서울시장은 청계천 상인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전담 대응팀을 꾸렸으며 1년 만인 2003년에는 특보와 청계천복원사업추진본부를 설치하여 공사를 강행했다. 그 결과 2005년에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모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임기 내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계천 복원 이면의 '눈물'하지만 생활하천이 돌아오게 된 기쁨의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숨어있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 주변 상인들에게 구두로만 보상을 약속했고, 따라서 이후에 상인들은 자신들이 약속 받았던 것과 전혀 다른 수준의 보상을 받더라도 법적으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
상인들이 단체를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면담을 갖고 그 자리에서 상인들에게 3가지 보상책을 약속했다. ▲ 상인대책전담기구 운영 ▲ 잔류와 이주 구분 없는 상권 조성 대책 마련 ▲ 이주단지 건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상인대책전담기구는 1~2년 만에 다른 기구에 편입되어 사라졌고 잔류 상인들을 위한 상권 조성 대책은 전무했다. 결국 이들 보상책들 중 엉성하게나마 이행된 건 단 한 가지, 이주단지 건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