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명군에게서 받은 사진. 함께 밤을 지새었던 공항노숙(?) 동지들
정수지
"우리 상하이에서도 만나지 않았던가요? 좌석도 앞 뒤였는데…."이것도 인연이라며 한국말로 "신기하다" 혼잣말을 내뱉는 순간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렇게 셋이서 함께 대화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여행의 시작을 앞둔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존재였을 테다.
구미에서 온 종명군은 2년 전 다녀간 인도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때와 똑같이 두 달간 혼자서 여행할 거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20대 후반에 일을 그만두고서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온 이 친구에게서는 용기와 여유가 물씬 느껴졌다.
"누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좋은 사람 같아요."신나는 여행을 앞두고서 어디 얼굴 찌푸린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봐주는 당신이 분명 따뜻한 사람이겠지. 오사카에서 온 유키는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다.
'인도가 처음이면 너무 세지 않아요?'인도 다음에 동남아로 떠날 거라는 파릇파릇한 20살 청년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넘치는 자신감과 패기, 자신을 향해 펼쳐질 찬란한 순간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설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싱그러웠다.
"상하이 도착했을 때 중국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지 뭐예요. 실패해버렸네요."여행이 처음이라 무조건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줄 알고 종이를 들고 왔다고 한다. 다이어리에 출입국 신고서를 붙이며 '나의 첫 번째 실패'라고 써 붙이는 유키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마냥 두근거리고 있었다. 여행은 이렇다. 실패마저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마법이 존재한다.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는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뉴델리 역을 빠져나온 뒤 들었던 생각은 황톳빛 난국. 내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세계. 가공되지 않는 삶이 눈 앞에 펼쳐진 이곳은 바로 인도였다. 이래서 인도, 인도 하는구나. 나와 유키는 생경함과 신기함이 뒤섞여 두리번거리기 바빴지만 이미 길을 알고 있는 종명군은 "눈길 주지 마세요, 저 따라오세요"하며 우리를 안내하기 정신없다.
"수지상, 오길 잘한 것 같아요.""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신기해. 너무 달라."뉴델리 기차역 근처에 들어서자 이내 긴장을 했다. 인도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종명군이 내 옆에 붙으며 "시선을 주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걸으세요"라고 조언해준다. 덜컥 겁도 났다. 가방을 부여잡고 수십 번을 지갑과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확인했다. 역에서 넘어가는 길도 릭샤를 유도하기 위해 외국인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는 곳. 어디서 왔느냐고 수십 번 물으면서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바가지 씌우는 소녀에게 당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