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무출판사 허영수 편집장
인터파크
- 어려운 내용을 쉽게 담으려는 노력은 편집자분들의 공통분모인 것 같습니다. 편집장님은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저는 국문학 전공했어요. 오히려 이것이 과학책 만들 때 장점이 되기도 해요. 전혀 모르고 있던 분야에 대한 책을 만들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며 일할 수 있거든요. 일반 대중 독자들의 시각에서 편집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게 무엇보다 큰 장점이죠."
-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과학지식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것에 관심이 크신 것 같습니다. 책을 만들 때 편집장님만의 원칙이 있나요?"제 원칙은 책을 어렵게 내는 것입니다."
- 어렵게요? 쉬운 책을 내기위해 노력하시는 줄 알았는데."네, 내용은 쉽게 해야죠. 제가 말씀드리는 어려움이란 책 만드는 과정을 어렵게 하자는 거예요. 처음 편집 작업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정말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집 과정이 수월했으면 좋겠다고 바랐었죠.
원고 내용이 어렵고 난해해서 어렵기도 했고, 어떨 때는 도대체 이 내용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콘셉트를 잡는 게 모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쉽게 할까를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책을 쉽게 내면 안 되겠다 마음먹었어요.
제가 어렵게 느낄수록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고민이 깊을수록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 같아요. 책에 공을 들이고, 핵심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애씀을 독자분들이 가장 잘 알아보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어려운 과정을 겪어서 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민을 더 많이 하자는 나름의 원칙입니다. 책을 한 권씩 만들 때마다 저 자신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 어렵게 작업할수록 더 쉬워지는 역설이군요. 더 깊은 고민을 통해 해나무가 추구하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책이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 "해나무 책 중에 샘 킨의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다루는 과학 내용은 만만치가 않아요. 화학의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주기율표의 원소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원소의 이름만 알면 우리 삶에 아무런 울림이 없죠."
- 학생 때 주기율표만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울림은 없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주기율표의 세로줄과 가로줄에는 수많은 역사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저자는 주기율표에 담긴 뒷이야기를 역사적 맥락과 결합했죠. <사라진 스푼>을 읽다 보면 마치 역사서를 읽는 것 같은 재미가 있어요.
저자 샘 킨은 재기발랄한 글솜씨가 있는데, 저희는 글맛의 힘을 믿었습니다. 굉장히 수다스럽고 빌 브라이슨 보다는 조금 더 격조 높은 농담을 하는(웃음), 재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참 많이 고민한 책이었어요."
- 책 판매도 좋았죠?"<사라진 스푼> 한국어판을 작업하는 중에 원작이 출간됐어요. 유명한 과학자도 아닌, 과학 칼럼니스트의 데뷔작이었는데 뜨거운 반응을 보였죠. 글 자체가 뛰어났던 거로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덕분에 해나무에서 출간됐을 때도 후광을 입어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 작년에 <사라진 스푼>의 후속작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네,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인데요, DNA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간에 유전적으로 혼합이 있었는지,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유전 질환에 대해, 인류가 멸종할 뻔했던 사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에 시달린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이야기….
이런 식으로 역사 속에서 발굴된 다양한 DNA 이야기를 담았어요. 야심 차게 준비해서 책이 나왔는데 500페이지가 넘고, 처음부터 끝까지 DNA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독자분들께서 아무래도 어렵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전작에 비해서는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지만 저는 이 책을 만들면서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생물학에 접근하려면 밟아야 할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갈래의 줄기를 잘 잡으며 읽어야 하죠. 그래서 생물학은 어렵다기보다는 복잡한 것 같아요. 참, 올 하반기에 샘 킨의 새 책을 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 어떤 책이죠?"<뇌과학자들의 결투>라는 책입니다. 이충호 번역자분께서 샘 킨 책 작업을 계속해주시는데요, '주기율표, DNA를 다룰 때도 흥미로웠는데, 이번 뇌 과학책은 더 재미있는 것 같아'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뇌가 끝나면 마음은 어디서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에요. 뇌 질환이라든가 기묘한 신체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뇌 과학의 현주소를 밝히는 책입니다."
137억년 우주의 역사를 담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