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농업, 수산물 사업을 위한 사업단의 벼배기금강산관광은 단순 관광 사업이 아니었다. 통일준비를 위한 기반시설 조성은 물론 사회문화교류,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기도 했다. 사진은 통일농수산사업단이 2005년 10월 삼일포 통일 벼베기를 하는 모습이다.
현대아산
- 어느덧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강산관광이 재개 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왕자씨 피살사건은 명백하고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 전체가 이렇게 장기간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합니다.
금강산관광은 단순 관광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남북의 대립과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대화의 창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남측의 시장경제를 북한에 전파하고, 북한에 개혁·개방의 학습효과를 전파하는 동시에 사회간접자본 개발로 통일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일반 주민들의 왕래로 남북의 편견과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 개최 장소로 사용되면서 인도적 지원의 장으로서 역할도 했습니다.
금강산관광이 장기간 중단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된 통일정책을 펼쳐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약 18년간 '한스 디트리히 겐셔'라는 단 한 명의 장관이 통일정책을 담당한 경우입니다. 독일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통일 정책만큼 거시적이고 항구적인 틀 안에서 정책적 기조를 일관되게 진행해 왔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 정부는 3대-17대까지 무려 15명의 통일부장관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정권교체에 따라 대북정책은 심각한 부침현상을 겪어왔습니다. 이로 인해 민간지원, 남북교류협력, 남북경협, 인도적 지원, 민관협력 등 애꿎은 민간차원의 피해만 늘어났고, 남북관계 역시 지속적·장기적 안정적 관리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광복 70주년, 염원을 실천으로 옮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