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X들 전성시대'를 연 박정희와 프리토리언들. 왼쪽부터 강창성 보안사령관, 김형욱-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윤필용 수경사령관, 박종규-차지철 경호실장,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김당
10.2 항명과 5.29 반란은 집단행동을 배태한 시대 배경이 다르다. 전자는 69년 박정희를 위한 3선개헌에 앞장서고 71년 대선-총선의 양대 선거를 치르며 공화당의 신주류로 부상한 '4인체제'가 자신들을 견제한 비(非)4인계의 선봉인 오치성 내무장관(의원 겸직) 해임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가 '비박'으로 돌아선 김무성-유승민 체제가 독자노선을 걷기 위한 '파워 테스트'를 한 것이다.
사태의 전개 양상도 다르다. 10.2 항명 때는 당일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이후락 정보부장이 마치 준비라도 한 듯이 전광석화처럼 주동자들을 끌고가 치도곤을 해서 탈당계를 받고 '상황 끝'이었다(당시는 탈당계를 내면 의원직도 사퇴하게 돼 있었다). 5.29 반란 때는 근 한 달을 기다린 박근혜의 거부권 행사와 '배신자 심판' 발언이 나왔다. 그럼에도 상황이 종료되지 않자 '여왕 홍위병' 노릇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 등이 앞장서 '유승민 고사작전'을 펼쳐 왔다.
이처럼 배경과 양상은 다르지만, 이른바 통치권자의 정체성이 닮은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근대성'이다. 당시 언론이 사용한 '항명'이라는 용어와, 박근혜가 직접 규정한 '배신자' 코드의 공통점도 전근대성이다.
그 아버지의 딸임을 감안하더라도, 전근대성이 유전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오히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전근대성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정신지체다. 박정희 시대가 끝난 지 36년이 지났음에도 박근혜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유신공주'라는 코드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항명은 군신관계나 병영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다.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혐의로 처벌하는 항명죄는 군형법(44조)에만 있다. 10.2 항명 당시의 석간 <경향신문> 1면을 보면, '오(吳)내무 해임안 가결'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함께 '여(與) 권력구조에 파동 예상, 최소 18표 이탈…항명 처벌엔 한계'라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결과적으로 '항명 처벌엔 한계'라는 진단은 틀렸다. 그때는 정부를 감시하는 의원이 '항명죄'로 의원직을 박탈당해도 찍소리 못하는 '폭압적인 군정' 시절이었다.
배신(자)은 봉건-조폭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다.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봉건제후 시절부터 강조된 도덕윤리의 영역이지, 민주공화국에서는 법적인 처벌이나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의리를 중시하는 조폭사회에서 배신은 조직 보전을 위한 응징의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저주 섞인 호소는 '여왕과 공화국의 불화'라는 표현에서 보듯, '유신공주'에서 지적 생장이 멈춰버린 '여왕의 민낯'을 보여준다.
'아씨와 머슴' 관계 드러낸 '여왕의 민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