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눈이 오름 분화구 속에서
황보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행기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떠나기 얼마 전에야 부모님께 여행 소식을 알렸고, 언니에겐 24인치 캐리어를 빌렸다. 출장을 제외하고 이렇게 오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어서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해 엄마의 혀를 차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꼭 가야 할 어딘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제주도의 웬만한 곳은 다 가본 터였고(떠나기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중 특별히 또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루하다 싶으면 게스트하우스에 어디 갈 만한 곳이 없는지 물어볼 작정이었다.
차도 빌리지 않고 걷거나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버스를 탈 일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자 거의 매일 버스를 탔던 것 같다. 내 다리로는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었고, 나중에는 이곳 저곳 가고 싶은 곳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중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오름'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에는 360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 오름이란 화산 분출물로 만들어진 기생 화산을 말한다. 그냥 쉽게 '작은 산'이라 생각해도 된다. 제주도 지도를 펴 보면 ○○오름이나 △△봉이라 이름 붙여진 곳들이 꽤 많이 보일 텐데, 이게 다 오름이다. 유명한 관광지인 성산 일출봉도 제주도 오름 중 하나다.
몇 군데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 용눈이 오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시 한 번 꼭 오르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 오른 것이 너무나 아쉽다.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 오름을 오르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로 아쉽다. 다음 제주도 여행에선 이 두 오름을 꼭 먼저 오를 예정이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술도 자주 마셨다. 걷기도 많이 걸었고, 버스 기사 아저씨와도 거의 매일 '밀당'을 했다. 비를 맞는 건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 너무 피곤해 침대에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 종일 한 적도 있었다. 중국인 친구도 사귀었고, 한국인 친구도 사귀었다. 나이 때문에 골치가 아픈 적도 있었고, 처음으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나름 목숨을 걸고 달려 본 적도 있었다. 이모든 걸 나는 혼자 했다.
이제야 나는 왜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행은 혼자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지를 알겠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의 반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곳에 그렇게 오래 멈춰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고, 하늘을, 바다를,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혼자여서, 참 좋았던 여행이었다. 물론, 조금 외롭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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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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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달만 제주'... 참 좋았다, 외로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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