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제작한 작품 ‘미황사’. 해남 송지면에 있는 미황사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이다. 달마산 상봉에 길게 뻗은 석봉은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홍 화백 작업실 1층에 목판본(사진 아래)과 민예총 기관지인 월간 ‘민족예술’ 표지에 실린 책(사진 위)이 함께 있다.
김영숙
"이건 용매예요. 용처럼 줄기가 구부러져 있습니다. 이건 제가 좋아하는 송광매예요.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가져온 거죠. 이것은 줄기가 파란 청매이고, 저건 홍매예요. 재래종은 열매인 매실이 굵어요. 전 해남에서 가져온 해남매와 송광매 등 토종 매화나무가 좋습니다."
길가에서 홍 화백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건물 입구까지 10여m 양쪽에는 매화나무 열일곱 그루가 있다. 수령은 대략 15년쯤 됐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고서 심었다.
그는 정원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뿐 아니라 매화에 얽힌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로맨스에서부터 '혹한을 이기며 은은하게 피어나는 매화의 향기야말로 선비의 정신이고, 이것을 배워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매화가 피는 시기 이곳을 찾아오는 벗들과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때가 행복하다는 홍 화백. 그에게 매화에 얽힌 역사와 매화의 정신을 30여분 더 들은 후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눈이 오는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품는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매화를 단순한 꽃이 아닌 인문학적으로 접근했어요. 나와 매화의 성품을 교감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매화는 지조와 절조, 강인함이 있어요. 매해 봄이면 매화가 피어있는 곳을 답사해 완상(玩賞)하고 그림으로 그립니다."2001년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 '차와 매화'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 홍 화백은 오는 7월 6일부터 매주 월요일 총5회로 연수도서관에서 매화를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판화의 시조인 팔만대장경을 만든 곳, 인천 2층 건물은 가운데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뉘어졌다. 입구를 기준으로 1층 왼쪽에는 판화의 모체인 나무판이 보관돼있다.
"판화를 하다 보니 서원이나 절,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각이나 판을 많이 연구했어요. 판의 재료인 나무도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게 달라요. 영남지방은 단단한 돌배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호남지방은 내장산 등에 많이 있는 단풍나무를 선호하죠. 합천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에 사용된 주요 나무는 산벚나무(67%)와 돌배나무(13%)예요. 세계유산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이 강화도 선원사지예요. 판화가들은 해인사를 판화문화의 성지라고 해요. 그 시발은 인천 강화도 선원사에 설치한 대장도감이죠. 해인사는 만든 것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지, 시작은 인천입니다."그의 작업실에 보관하고 있는 목판은 현재 작은 작품까지를 포함하면 사오백여 점 된단다. 계단 오른쪽 공간으로 이동하니, 이곳을 찾는 방문객을 위해 판각을 시범보이기도 하는 공간이다. 홍 화백은 한번 칼을 잡아 보라 권했다. 덕분에 고급스런 목판에 칼집을 냈다.
또한 이곳은 근대 판화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할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작은 판화박물관 같았다. 작년 초, 홍 화백은 '한국근대판화사'를 판화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모은 지 15년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100년도 더 된,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신문들이 있었다. 목판으로 새긴 동양화를 수집하기 위해 1906년에 발행된 '대한매일신보'를 갖고 있었으며, 1898년 창간된 '제국신문'과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도 있었다. 동판을 사용하는 윤전기가 나오기 전에는 모두 목판으로 인쇄된 것들이다. 꽤 값어치가 있는 골동품들이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작업실에서 홀대를 받는 듯해 안타까웠다.
"고서를 취급하는 중개인들이 소장하고 있었지만 작품의 진가를 보는 눈이 부족해 묻혀있던 자료가 많아요. 미술평론가들이 정리해야 했는데 못했죠. '한국근대판화사'는 조선 후기부터 개화기, 대한제국시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까지 판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본 책입니다. 쓰고 나니 추가할 내용이 더 생겨 재판 때 보강할 생각도 합니다. 책이 출판되고서 석ㆍ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문의가 많이 옵니다.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시대정신을 담은 1980년대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