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막걸리집에서 풍성한 전주막걸리를 즐기는 고향친구들 전주의 대표적 술문화인 전주막걸리는 풍성한 안주를 제공하는게 그 특징인데 유명세를 타며 상업성에 물든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말을 맞아 비가오는데도 밖에까지 길게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치식
방문소식을 듣고 전주에 사는 여자 친구들 셋이 왔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세 차례나 풍성한 안주를 주문했기에 안주가 풍부해서 막걸리만 추가하는데 잔뜩 마뜩찮은 얼굴로 주인이 다가와 술만 시키실 거면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 밖에 길게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입장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술이 몇 순배 돌기도 했고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친구들을 추슬러 서둘러 나와서 전주만의 독특한 또 다른 술 문화인 가맥으로 유명한 전일슈퍼로 자리를 옮겼다. 막걸리와 가맥으로 대표되는 전주의 술 문화를 모두 맛보게 하고 술이 얼큰해서 숙소인'승광재'로 향했다.
취해서 잠들었음에도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인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마신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는 친구들을 서둘러 깨워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왱이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에 낯이 익은 주인이 나오기에 인사를 했는데 그때 잠이 덜 깬 친구하나가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 얼음을 띄운 설탕물을 가져와서는 마시게 하더니 연이어 종업원이 술 깨는 약을 가져다 주었다. 부탁한 바도 없는데 술 취해 힘들어 하는 거라 생각하고 종업원을 시켜 약을 사오게 하고는 자기는 손수 설탕물을 준비해 가져다준 것이다. 친구들 모두가 이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감동을 했으며 나 역시 전주의 푸근한 인간미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해 뿌듯했다.
술로 다친 속을 얼큰한 해장국으로 달래고 덤으로 생각지도 않던 호의에 감동한 친구들이 주차장 옆 야외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때 사장님이 나오셔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후덕한 사장님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종업원에게 전화를 걸어 콩나물을 7개의 검은 봉지에 담아 가져오라고 했다.
잠시 후 일반 비닐봉지에 가져온 콩나물을 보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가게로 들어가 외국 계 유명 의류회사 쇼핑백을 7개 가져와 '남자들이 열차타고 가는데 검은 비닐로 가져가면 창피하니 이렇게 깔끔한 곳에 가져가야 한다' 하신다. 검은 비닐에 담은 것은 콩나물은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며 일일이 새로 포장을 해 건네주었다.
술 깨는 약과 설탕물에 감동받은 친구들은 "콩나물국밥 먹으러 왔다가 덤으로 전주의 인심을 맛보았으며 멋지게 포장된 사랑을 선물로 가져가게 되었다"라고 즐거워 한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이런 넉넉함이 전주의 모습이고 내 소중한 친구들이 이번 방문을 통해 그 정수를 맛본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러는 중에 숙소인 승광재에서 전화가 마지막 황손 이석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기에 서둘러 승광재로 향하였다. 승광재에 가니 깔끔한 한복차림의 (사)황실문화재단의 이석총재님(75, 전주시 풍남동)이 일단의 사람들과 마당에서 토스트, 감자, 음료 등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1960년대 궁에서 쫓겨나면서 생활고에 시달려'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자원해 월남전에 파병된 적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