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학기 중 한 학기 완제드디어 다 갚았다
이수지
휴, 겨우 한 학기 다 갚았구나... 이 빚만 없었어도그렇게 기쁘게 한 학기 학자금을 털어낸 것도 잠시, 여전히 수북하게 쌓여있는 학자금에 다시 눈이 돌아가니 수고했다고 나 스스로를 격려할 시간조차 없었다. 앞으로 갚아야 할 총 7학기의 학자금. 매월 받는 금액이 160만 원 정도이다보니 한 달에 학자금을 갚을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었다.
먹을 것 더 줄이고 쓸 것 더 줄여서 60만원, 70만원씩 갚아야만 했지만 서울에서 살림을 꾸려가며 친구들도 만나고 비싸진 않지만 옷이나 신발도 한 개씩 사야하니 저 정도로 갚을 능력은 전혀 안 되었던 상황이었다. 매달 상황에 맞게 많게는 50만 원, 적게는 10만 원씩 매달 갚아오니 한 학기 등록금 갚는 데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앞으로 7학기 학자금을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갑자기 나가는 경, 조사비 등의 생활비까지 감안해 계산하면 70개월이 걸린다.
거의 6년. 돈을 더 많이 벌고 먹을 걸 덜 먹고 쓸 걸 덜 써서 한 달에 백 만 원씩 갚으면 3년 내외로 다 갚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집값, 생활비는 필요하고 보증금과 언제 필요할지 모를 돈을 만들기 위한 적금, 통신비, 교통비 등 살아가면서 내가 써야하는 부대비용은 여전히 많다. 이것들을 다 포기하고 학자금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에 겉으로는 즐거운 청춘이고 현재를 즐기는 멋진 청년이지만 속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빚쟁이일 뿐이었다.
대학 때 가진 사회적경제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돼 지금은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중간지원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기업이 아니다보니 큰 돈을 벌 수는 없었다. 업무하중도 많지 않고 사회적경제라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드는 가운데서 무언가 노력하고, 작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당당했기에 돈을 적게 벌어 억울하고 부끄럽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작점이 마이너스이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감은 꽤 있었다. 돈을 벌어서 3000만 원을 갚는 것과 3000만 원을 벌어 모으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인 것이니까.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심지어 내 친구들은 취업도 다 잘 하고 있다. 청년실업이 주된 화두로 떠오르는 이 마당에...) 평범하게 돈을 벌어 모으고 미래를 안정적으로 꿈꾸는 친구들을 보면 내 생활에 대한 무력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 벌어도, 이렇게 해봤자 난 겨우 빚만 갚을 뿐이잖아. 이렇게 해봤자 남는 건 없잖아, 라며 내일에 대한 힘과 기대가 자꾸만 없어지고 무력감이 자꾸만 나를 덮쳐왔다.
사실 편하게 생각하면 빚 그 까짓것 급하게 갚을 필요도 없다. 이 세상에 빚 한 푼 없는 사람이 없고 급하게 빨리 청산할 필요없이 거치기간 끝나고 조금씩 오랫동안 갚으면서 내 삶에 부담이 안 될 정도로의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스스로도 성장하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개인적으로 강한 것이 빚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어느 때보다 열의 넘치게 누군가를 만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20대인데 돈을 벌어서 모으기는커녕 마이너스였던 내 삶을 겨우 '0'인 삶으로 올리기에도 현재 나는 굉장히 버겁다. 그러나 어느새 돌아보면 빚에 쫓기는 이런 일들이 나만의 특징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을 한 번 이상 받은 청년들이 너무 많아 흔한 일이 되어버렸기에 누군가에 징징댈 수도 없는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다.
게다가 내년 2월부터는 거치기간마저 끝나 실제로 몇 십만원씩 학자금을 자동으로 상환해야하는 기간이 어느새 찾아왔다. 2009년부터 학자금을 받을 땐 거치기간 6년이면 꽤 기니까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많이 갚았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내년으로 다가오니 난 뭘 했나 하는 자괴감에 한동안 꽤 많이 힘들었다. 단시간에 무언갈 이루고 해결하려고 하는 급한 성질 때문에 자꾸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조급해진다. 아직 젊은데 뭘 그리 서두르냐, 천천히 가도 잘 가고 있다라며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시지만 자꾸만 마음이 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청춘을 가진 사회많은 사람들이 "청춘들이여, 젊은이들이여, 하고 싶은 걸 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해라!"라고 소리친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이 나온다. 누가 재밌는 거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줄 알고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나.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면서 실패도 해보고 경험도 해볼라치면 그러한 시간과 경험을 '인턴'이나 '스펙'으로 포장하지 않는 이상 내가 하고 싶어했던 일들은 그저 허무하게 시간을 보낸 '사치'로 끝이 난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좀 즐기려고 하거나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토론도 해보는 동아리 활동을 해볼라치면 그것 또한 취업을 위해 면접관들에게 '증명'하고 설명하지 않으면 시간만 흘려보낸 놈팽이가 되어버리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자꾸 마음껏 도전하라는 말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 '일'과 생업으로 둔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러한 답답한 세상의 모습을 바꾸려는 청년들이 단체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고 어느 세대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각자 저마다의 문제인식과 방식은 다르지만 하고 싶은 걸 하고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꾸기 위한 작지만 큰 노력이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유니온 등의 형태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들을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힘을 얻으며 고되지만 대한민국을 청년들이 힘내서 잘 살 수 있도록 바꿀 수 있도록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청년들은 고군분투 중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청년들의 노력마저 없었다면 활력따윈 없는 자꾸만 무기력하고 침체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넌 너무 사서 걱정을 하는 스타일이야. 그냥 지금만 살아."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리 사서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가장 큰 조언 중 하나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준비하고 전전긍긍하면서 현재에 즐길 수 있는 내 생활을 전혀 즐기지 못하며 불행하게 사는 것 같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평.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이었기에 부모님과 나는 돈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사라지지 않는 빚으로 인해 부모님도 나도, 빚이라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한 삶인데 어느새 학자금 대출로 인해 나 또한 부모님을 따라서 빚쟁이의 길로 자연스레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현재를 살아내야 한다. 성격상 마냥 낙관적이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건 바꿀 수 없지만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도 너무나 많고 해보지 못한 일, 먹어보지 못한 것, 느껴보지 못한 무수한 감정들도 많다는 걸 항상 기억하려고 한다.
염세적으로 인생을 살기엔 아직 겪어온 시간과 삶의 방식이 너무나 짧기에 오늘도 난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웃어본다. 몇 천 만원의 짐은 생각하면 할수록 무거워지기만 할 뿐이다. 세상에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각자의 고통과 힘듦을 이고 지며 살면서 소소한 행복 하나로 웃을 수도 있고 곁에 있는 가족, 곁에 있는 친구들, 좋은 풍경과 좋은 먹거리들로 오늘의 근심을 또 잊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