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미술작가들이 모여 수 년 전부터 653예술상회 앞 골목길을 벽화로 채우고 있다. 꾸준히 그림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653예술상회
"2000년 즈음 한국 예술계의 괄목할 사건은 공공미술의 등장이었죠. 그때는 구체적인 개념이 없어 '바깥 예술'이라고 말했어요. 미술관 안이 아니라 미술관 바깥에서 작품 활동하겠다는 거죠. 제도권 미술에 대한 저항이었어요. 특히 어렵던 예술계에 정부 예산도 풀렸죠. 정부쪽에서는 생색내기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측면도 있었지만 어찌됐건 문화 예술이 전파되는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죠."이종현 작가는 청주지역 예술가 예닐곱 명을 모아 팀을 꾸렸다. 이름은 '공사삼일'. 당시 충북의 지역 전화번호인 0431에서 따왔다. 자신의 애마인 1톤(t) 용달차에 회화 작품과 공예품을 싣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도심지 등을 다니며 게릴라 전시를 했다. 2001년에는 쇠락하고 있는 가구공장에서 미술전을 열었다. 진열된 가구 안에 그림을 걸어 놓기도 하고, 판매 대기 중인 화장대와 식탁 등에 작가들의 소품을 설치했다. 미술관이 아닌 일상적 공간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열정페이'에 기댄 작업은 오래가기 어려웠다. 잠깐 지역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작가들이 별다른 수입원 없이 자비로 활동하다보니 사업을 지속할 동력이 금방 바닥났다. 5년여 함께 활동하던 작가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남은 이 작가는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독신이라 딸린 가족도 없으니 결심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짐을 싸서 친구가 있던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하지만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겨 몇 달 못 있다 귀국해야 했다. 주변의 시선이 부끄럽기도 하고 자분거리는 말도 싫어 일 년 가까이 폐인 생활을 했다. 낮에는 잠, 밤에는 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계속 한계에 부딪치니까 못 버티겠더라고요... 남들 보기도 부끄럽고 해서 거의 일 년 가까이를 햇빛 한 번 안 보고 살았죠."그러다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친구가 운영하는 보리밥집에서 두 달 동안 일을 해 모은 3백만 원을 쥐고, 외국인 친구가 사준 자전거를 타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동해 바다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2007년 5월부터 63일 동안 전국 4500킬로미터(km)를 여행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순진했던 이웃이 1998년 사북리에 생긴 강원랜드 카지노에 빠져 폐인이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충남 태안군 만리포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 곳에서 바닷바람 짠 내음을 견디고 한번 살아보라고 말했다. 전라도 지리산 언저리 어느 마을 사람은 자연의 가혹함을 버티며 산에서 한 번 살아보라고 당부했다. 구원을 찾아 떠났다가 귀향해 다시 전투를 벌이는 영화 <매드맥스> 속 전사들처럼, 이 작가는 다시 청주로 돌아왔다.
쇠락한 옛 도심을 아이들과 함께 되살리다 2007년, 긴 여행을 마치고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일어섰다. 충북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입주 작가로 들어가 국제교류사업을 도우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월급으로 60만 원을 받았다. 첫 무대는 청주시 내덕동 안덕벌이라는 마을이었다. 그 곳은 80년대만 해도 '돈이 도는 동네'였지만 2004년 연초제조창이 폐쇄되면서 주민들이 떠나는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