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의 파사드와 종탑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파사드(정면). 오른쪽은 어제 만난 '지오토의 종탑'입니다. 19세기 말에 겨우 완성된 파사드와 50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종탑이 잘 어울리지만, 간혹 지나치게 화려한 파사드라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박용은
거기다가 두 지붕 사이에 고리 모양의 테두리들을 여러 층 쌓아 올려 두 지붕의 사이의 안정성을 높였는데,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통로와 계단이 그 고리 구조의 일부입니다. 건축 공학적 기능에 실용적 기능까지 더한 고리 구조.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이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쿠폴라의 구조와 건축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된 영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돼있지만 화면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가능 하실 듯합니다).
그런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과 의지와 노력이 스며있는 내부 쿠폴라에 손끝을 대봅니다. 오래된 석탑에서 돌의 온기와 생명력을 느꼈다는 누군가의 글이 떠오릅니다. 만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쉽지 않은 회화나 조각과 달리 건축물은 이렇게 만질 수도 있고, 그 속을 거닐 수도 있고, 심지어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건축물은 그렇게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의 호흡과 함께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돼 가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두오모를 흠뻑 느끼다그렇게 많은 것을 떠올리며 한참을 올라가자 어느 순간 눈앞에 파란 하늘이 빛나더니 오렌지빛 피렌체가 펼쳐집니다. 분명히 어제 오후, '지오토의 종탑'에서 한 번 경험한 풍경이건만 나는 또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반대로 그 종탑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섭니다.
왜,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인지 알 것 같습니다. 파랗고 투명한 하늘과 눈부신 아침 햇살 아래 온통 오렌지빛으로 반짝이는 피렌체는 그 자체로 꽃이었습니다. 오랜 그리움 속의 연인을 만나서였을까요? 그 눈부신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연방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쿠폴라에 오르기 전 만났던 브루넬레스키가 한없이 부러워집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단지 자신이 올린 쿠폴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만 가지 사연과 지난한 삶을 거쳐 그의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만나는,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 아무도 큰 소리로 환호하지 않는,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보다 깊은 가슴 울림을 느끼는 그들의 행복이 그의 쿠폴라와 함께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분명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겁니다.
쿠폴라에서 내려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전체를 한 바퀴 빙 돌아봅니다. 어제, 종탑만 오르고 일부러 외면했던 내가 밉지도 않은지 두오모는 그 아름다운 속살들의 작은 한 부분도 남김 없이 모두 보여줍니다. 나는 마음껏 두오모를 느낍니다. 마치, 첫 문화 유산 답사에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감은사지 3층 석탑을 보고 사춘기 소년마냥 가슴 설렜던, 이십대 청춘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김동률의 노래처럼 '이런 설렘을 평생에 또 한 번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브루넬레스키가, 두오모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성당 전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이제야 파사드(건물의 정면)를 제대로 봅니다. 1587년 파괴된 이후 19세기 말에 겨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파사드는 자기보다 500살이나 많은 '지오토의 종탑'과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파사드 맞은편의 '산 조반니 세례당'이 마침 전면 보수 공사 중이라 세례당, 종탑, 두오모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피렌체 건축의 향연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제 성당 정문을 열고 두오모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쿠폴라는 정문이 아니라 다른 곳을 통해 올라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