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 어떻게 아시아를 다시 지배할 수 있었나?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와 뿌리>
내일을 여는 책
미주리 센트럴 메소디스트 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선우학원 박사의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와 뿌리>는 이런 일본을 파고든다. 책은 일본 군국주의가 발아한 환경과 이를 자라나게 한 자양분이 무엇인지 상세히 추적한다. 결론적으로 일본 자본주의는 변질됐으며, 강력한 제국주의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둬야 할 배경이 있다. 때는 메이지 유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100년 이상 지속되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50년간 평화로운 에도 막부를 열었다. 안정적인 시대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사무라이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일반 국민이 봉건주의 명령에 절대 순응토록 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국가는 우수한 지도자들의 관할 아래에 있으며, 국민은 그저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국민은 지도자들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법을 잘 따르고 복종하라 선전했다. 그 중심 사상은 국민의 복리가 아닌, 지도층의 이권 보장에 있었다. 이 충복 사상이 곧 일본의 무사도처럼 변질됐다. 그 중심에는 '사무라이'가 있다.
그러니까 결국 봉건적인 에도 막부 시대의 군벌이었던 '사무라이'가 메이지유신의 엘리트가 됐다. 군복만 벗었을 뿐 그들이 일본의 숭고한 전통이라 여기는 일종의 '무사도'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여기서부터 일본의 군국주의는 시작된다.
일본 애국자는 봉건 시대의 노예 제도를 현대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적 마음의 준비를 가졌다. 그들은 봉건 정신을 그대로 무장한 메이지 정부 지도자의 지배 밑에서 자기들의 모든 재능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애국이었고 일본 민족주의였다. 이런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는 일본 사회에서는 분리할 수 없다. - <일본 군국주의의 역사와 뿌리>에서이런 기조는 당시 헌법에도 반영됐다. '천황은 신성하고 불가침이다'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의회를 무시하고 대중의 여론을 멸시했으며 극소수의 엘리트가 국가 정책을 좌우했다. 저자는 일본의 이런 면을 "히틀러 파쇼 제도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와 같은 이론은 없었다"고 평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에서는 전체주의를 애국과 착각하는 이들이 있지 싶다. 자, 이런 배경을 알았다면 지금의 일본 재무장을 이해하기 쉽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헌법'까지 제정한 전범국 일본이 어떻게 다시 군사 대국이 됐을까. 거기다 이 '평화헌법'까지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가능할까.
전범국 일본은 이렇게 다시 재무장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