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날인 25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남소연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은 명백히 비박 지도부에 대한 교체 신호다. 친박들이 노골적으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유 원내대표는 90도로 허리를 숙였고, 거듭해서 '대통령께 사죄'를 했다. 그는 대통령의 비토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난 이 순간까지도 "내가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필요하다면 더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그에 대한 사퇴 요구는 주류가 아니었다. 장장 5시간 동안 40명이 의사발언에 나섰다. 이들 모두 대통령이 화가 났다는 점은 명확히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눈 한번 감고 '유승민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마디 하면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대통령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을텐데 많은 의원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현 상황에서 친위 쿠데타식으로 대통령이 나서서 집권여당의 지도부를 교체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만일 유 대표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그만둔다면 후임은 과연 누구일까? 이 대목에서 친박은 자신이 없다. 2014년에는 경선 없이 박수로 이완구가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2015년에는 '비박' 유승민과 '친박' 이주영이 진검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84대 65로 유승민의 여유있는 승리였다.
상황을 정리해 본다. 지난 25일 박 대통령이 '유승민 아웃'이라는 메시지를 최고 수위로 던졌다. 청와대와 친박 정치인들이 분주히 그 메시지 실현을 위해 뛰고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과 의원들이 적극적이지 않다. 의원들도 자신들이 협의해 처리한 건을 가지고 원내대표에 책임을 묻는 건 자가당착이 아니겠는가. 이대로 며칠이 더 지나면, 그 사이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몇 번 사과를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김무성 대표 표현대로 '잘 수습'될 것으로 예상된다.
버티는 유승민 - 확인된 레임덕 새누리당에서 '잘 수습' 되었다는 건 박 대통령에게는 최고 수위의 '레임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정치인 박근혜호의 영향력이 침몰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미 25일 박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 있었고 며칠 지났는데도 사퇴하지 않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대통령의 위상을 보여준다.
새누리당 지도부 교체가 여의치 않은 경우, 상처입은 박 대통령을 얼굴로 하는 신당창당은 가능할까?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TK(대구경북) 신당을 의미할텐데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분노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유승민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일부 언론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만일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친박 등을 중심으로 신당을 추진한다면 보수세력으로선 정치적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유 원내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에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들은 친박 정치인들일 것이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친박은 더 이상 새누리당의 주류가 아니다. 원내대표 경선을 다시 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이길 자신이 없다. 다시 한번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만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의 남은 카드는 무엇인가. 자신의 정치력을 동원했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렇다면 이제 공안총리를 잘 활용하는 일이 남아 있는가. 집권여당 원대대표를 상대로 한 정치적 친위쿠데타를 넘어, 검찰을 동원한 '여당발 사정정국'인가? 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척 궁색해 보인다.
더욱 암담한 것은 집권여당 원내대표에게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난 이 시점이(27일 기준)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로 31명이 사망했고, 전국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85
공유하기
집권 3년 차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그 예정된 결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