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 님은 <이호테우> 사진책을 선보이면서 제주 이호테우 해녀 할머님을 모시고 2015년 5월 23일에 사진전시를 열었습니다.
권철
어느 날, 홍순화 할머니가 병원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이틀에 한 번 꼴로 무릎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나는 무심코 병원에 동행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메라를 들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완강하게 거절당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이렇게 소리를 치셨다. "저 양반한테는 사진 찍게 해 주게마시. 저 사진 찍는 삼촌은 물질하는 물속에도 잠수복 입고 따라 들어와 찍는데 병원에선들 못 찍겠소. 찍게 해 주시게마시 선생."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잠시 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112쪽)어머니는 할머니가 됩니다. 할머니는 머잖아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머니 해녀는 할머니 해녀가 되는데, 할머니 해녀가 흙으로 돌아간 뒤, 새로 '어머니 해녀'가 될 젊은 해녀가 없으면, 제주섬에는 무엇이 있다고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주섬에 있어야 할 사람은 '해군'이 아니라 '해녀'입니다. 제주섬에 있는 젊은이는 '군사훈련'이 아닌 '물일(바닷일)'을 할 노릇입니다. 제주섬에 있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면서 아름다운 삶자리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바라보면서 같이 알아차려야 합니다. 해녀가 있는 곳에는 사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해군(군부대와 전쟁무기)이 있는 곳에는 무시무시한 죽음이 있습니다. 제주섬이 나아갈 곳은 삶이어야 할까요, 죽음이어야 할까요? 한국 사회와 문화와 경제와 정치가 나아갈 곳은 삶일까요, 죽음일까요?
평화로운 삶자리가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사랑스러운 마실터(여행지)가 됩니다. 제주섬에 있는 올레길은 자가용이나 오토바이가 싱싱 달리는 길이 아니라, 두 다리로 걷는 길입니다. 제주섬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한다면, 제주 해녀가 제주섬을 오늘까지 투박한 손길로 살가이 어루만졌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제주섬이 오늘날처럼 널리 사랑받는 삶터가 된 바탕에는 바로 해주 해녀가 수수한 손길로 따스히 어루만진 살림살이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밥을 짓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빨래를 비비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아기를 낳아 어르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나락을 심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실을 자아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밟는 손으로 물질을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손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 이야기가 <이호테우>라는 사진책에 고이 흐릅니다.
이호테우
권철 지음,
눈빛,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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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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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해군’ 아닌 ‘해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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