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족보가 정리된 서가이다. 서가가 모자라 일부 족보는 바닥에서 대기 중이다.
라영수
김 원장은 KBS 한민족방송에 출연해 성씨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3개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방송을 들은 해외 동포들이 자신의 족보를 찾아달라고 수십 통씩 사연을 우편으로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최선을 다해 족보를 찾아 답신을 해줬으나, 어설픈 문의 내용으로는 원하는 답을 찾아주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3명의 봉사자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는 조사 작업이 수반돼야 했기 때문에 난처한 일이 됐다.
만약 한 성씨에 한 명이라도 연구원이 전담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3명이 모두인 부천족보전문도서관으로서는 불가능한 업무였다. 해외 동포의 갈증을 풀어주기는커녕 조국을 원망하는 계기를 줄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방송을 중단하는 게 상책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뿌리를 찾고자하는 조국을 방문하는 해외 동포의 다수가 김 관장을 찾아온다고 했다. 김 관장을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호적, 족보 관련 국립 및 시립도서관을 찾은 재외 동포들이 담당 공무원과 상담하면 김 관장을 찾아가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고 한다.
족보도서관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이 김 관장의 사비로 운영하는 민간 기구다. 우리 정부나 사회가 족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로 서 있지 못한 것은 김 관장이 족보 연구를 시작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른 변화가 없다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70평으로는 좁아 기존의 족보 자료도 서가에 다 꽂히지 못해 바닥에서 대기 중인 자료가 많다.
최근 신아무개씨로부터 인수 받은 자료는 아예 사무실 밖 빈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 쌓아놔야 할 정도다. 신씨는 우리나라 족보의 대가인 선배 족보 학자로서 옛날 남대문 도서관 시절부터 족보를 연구하고 필요한 분들게 만들어 드리던 분이다. 신씨가 작고하자 자손들이 신 선생의 자료를 보관할 길이 없어 김 관장에게 보관을 의뢰한 것이다. 김 관장에게는 귀중한 자료다.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건이 되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기념 연구실을 장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