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대형마트, 노동의 강도도 강력합니다수 만 가지 상품이 진열된 대형마트. 그 큰 매장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무거운 상품들을 정리하고 옮기고 진열하는 작업이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오재본
작년 이맘때 2015년 최저임금을 정할 즈음 누군가 "최저임금이 생활임금만큼 오르게 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싶다"라고 답했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글썽이게 됩니다.
어릴 때 제 기억 속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자식들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뒤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억척같이 일하고 월급날이 되면 뿌듯해 하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말이죠. 하지만 이런 부모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작스레 찾아온 IMF. 그것은 우리 부모님과 저와 언니를 '무기력화' 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계속 눈물만 흘리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반복하는 부모님과 한 순간 집이 넘어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을 벌어야만 했던 저의 20대 생활. 물론 처음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는 저 또한 '그래... 나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막연히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지요.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제게 남은 것은 꼬박꼬박 돌아오는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상환 날짜와 대출 상환일을 연장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한숨뿐입니다.
"내 자식에게만은 최고를"... 다 같은 부모의 마음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보같은 환상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이 지금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제가 40대가 되어도 안정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점을 배운 것입니다.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형마트 일을 하면서 만난 동료 직원인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가슴이 아픕니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월급은 100만~120만 원. 전 아직 미혼이라 챙겨야 하는 아이들이 없지만, 그 돈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언니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마트에서 일하는 언니들도 '내 자식에게만은 최고를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도 온몸이 녹초가 된 언니들이 유통기한 종료 임박에 할인된 우유와 햄, 달걀 등의 식료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퇴근합니다. 그 언니들의 심정을 최저임금위원회 분들이 조금이라도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파도 마음껏 쉬지 못하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신세. 한두 군데 고장난 건 기본이고, 십수 년 고된 노동에 그냥 놔둘 수 없는 병이 생겨 병원에서 수술을 권해도 행여 일자리가 없어질까 치료는 엄두도 못 냅니다.
"월급날이면 뭐하냐? 은행에서 빼가는 돈이 반이 넘는데. 뼈 빠지게 일해도 어째 빚만 늘어나지? 아우 열받아. 하긴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겉으로는 괜찮은 척 얘기하지만 끝내 뒷말을 흐리는 동료들. 그들의 팍팍하고 고된 생활을 어찌 모두 전할 수 있겠느냐마는 최저임금위원님들, 한번쯤은 그들의 서러운 마음들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가장들과 5분 정도만 얘기해 보세요. 금세 '아... 정말 5580원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겠구나. 민주노총에서 말하는 최저임금 1만 원이 허황된 얘기가 아니구나' 하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마트 노동자 월급이 200만 원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