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PD의 미니 다큐 <5분(5minutes)> 중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편. 권력층이 아니라 개인을 향하는 '수평 폭력'을 다루고 있다.
뉴스타파
김진혁 PD가 보여주는 '5분'은 뜨겁고도 서늘한 시간이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실감나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잠깐의 영상을 통해 씁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하기도 한다. 파편처럼 조각난 정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짧은 영상은 날카롭고도 명쾌하다. 영상과 함께 화면에 오르내리는 자막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중 인상적인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편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증오 범죄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교도소 실험'은 범죄 전과가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충격적인 결과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대학생들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극단적인 폭력을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당시 실험은 2주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순식간에 잔인하게 돌변한 실험 참가자들로 인해 5일 만에 중단됐다.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부여한 이후, 교도관이 된 학생들이 죄수 역을 맡은 학생들에게 거리낌없이 악랄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5분>의 해당 에피소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프랑스 군인으로 참전하여 '식민지' 출신 '흑인'으로 지독한 차별을 겪은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이 말한 '수평 폭력'의 개념을 풀어낸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잔인한 행동을 하는 현실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수평 폭력은 자신을 억압하는 근원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신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 207쪽 중, 프란츠 파농의 말 인용)미니 다큐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에게 쏟아졌던 폭력도 사례의 하나로 보여준다. 국가유공자의 부당한 대우를 국가에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의 보상이 문제라고 탓하던 상황.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 사람들은 이와 같은 감정적 반응에 동참했다.
그리고 다큐는 '수평 폭력'의 배경이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이라고 지적한다. 권위주의적 체계에 짓눌리던 사람들이 분노하고, 쌓인 감정이 한계에 다다르자 개인이 서로에게 감정을 분출한다는 것. 마치 '썩은 상자가 썩은 사과를 만드는 이유가 되듯이'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사회 내에 수평 폭력이 만연한다는 분석이다.
EBS 퇴사한 그가 담은 '세상의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