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안그라픽스
한국 디자인을 지배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이러한 구호이다. 한국의 현대 디자인은 출발부터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라는 위로부터의 목표에 강력하게 종속되었다. 그리하여 디자인은 우리 삶의 환경을 쾌적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선한 도구'가 되지 못하고 국가에 의해 '동원된 도구'가 되어 버렸다 … 주료 디자인은 무엇인가. 현대 디자인의 주류는 당연히 소비주의 디자인이다. 소비주의 디자인은 현대 소비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서 생산과 소비를 매개하며 소비적 가치를 추구한다. (11, 157쪽)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공예문화>(신구문화사,1976)를 읽을 적에는 그릇 한 점을 빚어서 쓰는 마음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릇뿐 아니라 수저 한 벌도, 옷 한 벌도, 신 한 켤레도, 싸리비랑 대바구니도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고이 쓰던 살림뿐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누구나 흔히 쓰는 살림을 찬찬히 아끼면서 건사하는 손길로 일으키는 아름다운 삶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빅터 파파넥 님이 쓴 <인간을 위한 디자인>(미진사,1986)을 읽을 무렵, 둘레에서 저더러 '디자인을 하는 대학교에 갈 생각이느냐?'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때에 빙그레 웃으면서 '나는 내 살림을 아직 정갈히 건사하지 못하지만, 내 살림부터 정갈하면서 알차게 건사하는 길을 배우려고 이 책을 읽어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도 <예술로서의 디자인>도 <공예문화>도 <인간을 위한 디자인>도 모두 '건축이나 디자인을 다루는 책'이 아닌 '삶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책'이라고 느껴서 곁에 두고 읽었습니다.
우리는 로스를 가리켜 '망치를 든 건축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는 서구 건축사에서 누구보다도 더 낡은 건축을 부수는 데 열정을 바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이성과 과학의 근대 서양 문명은 결코 동양 문명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유리와 전기의 문명은 종이와 등불의 문명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 지금은 비록 너희 서양 문명에게 압도당하고 있지만 우리 전통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근대 아시아의 맹주로서 일본이 발명한 동양의 모습이기도 하다. (23,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