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서 백기완 소장이 명진 스님의 말에 파안대소하는 모습.
김병기
비는 내렸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오대산 계곡 산바람이 빗물을 말렸다. 날은 흐렸지만 유쾌-통쾌-상쾌했다. 해학과 풍자, 비장함과 신명의 댓거리가 산길의 오르막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마주칠 땐 백발의 성난 눈이었지만, 산에서는 오래된 농담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명진 스님은 깡패 스님이야! 대한민국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니까! 스님이랑 걸으니까 나도 도가 트는 것 같아. 하-하-하-. 진짜 스님은 모든 집착을 깨는 거야. 그러니까 깡패지."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한 깡패였어요. 어느 날 제자가 불경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아란아, 너는 강을 건넌 뒤에 뗏목을 어떻게 하냐? 당연히 버리고 가지? 내 말도 버려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석가모니는 혁명적인 분이었어요. 또 당시 인도의 철저한 계급사회를 깨려고 했습니다." - 명진 스님오대산 산장 앞에서 '장산곶매 등산패'와 함께 이 말을 듣던 백 소장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한 등산패가 "대단한 구라"라고 말하니 명진 스님의 댓거리가 이어졌다.
"염무웅 선생이 조선 '4대 구라'를 꼽았습니다. 황구라, 백구라……. 그런데 3명의 구라가 모여야 명구라와 맞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백 선생님은 선동하고, 유홍준은 문화재를 잘 설명하고, 명진은 약 올리는 말을 잘한다나요. 하-하-하-." - 명진 스님"(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스님의 탁월한 인품을 좀 더 널리 베풀려면 이제 중 옷을 버리시오! (자기 옷을 가리키며) 이런 옷으로 빨리 돌아오시오. 남쪽의 최고 스님이 아니라 불교 역사상 최고 스님이야!" - 백 소장지난달 30일 떠난 등산패 장산곶매 20돌 기념 산행은 한 편의 마당극이었다. 1박2일 동안 물소리와 바람소리, 판소리와 시낭송이 어우러졌고, 산중 강연과 재담, 추임새가 이어졌다. 주인공이자 관객들도 낯이 익었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전 MBC 사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철 화가, 유초하 충북대 명예교수, 임진택 국악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정책실장, 이번 산행의 길잡이인 명진 스님. 그리고 노동자들.
백기완 소장과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봄과 여름이 엇갈리는 5월의 마지막 주말에 '아름다운 만남'을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