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렛트 위에 혜선 씨가 진열해야 할 물건들이 성인 키보다 높게 싸여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그는 만나자마자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갓 지점에서 도착해 혜선씨의 정리 손실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물건이 물류창고에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얼기설기,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각종 식품이 쌓여있었다. 포장김치 같은 상품도 신선가공 쪽에서 취급하는데, 그런 것들은 혹시나 떨어져서 터질까봐 옆의 다른 제품들과 랩으로 칭칭 감아놓았다. 쌓은 높이가 성인 키보다 높다.
"오픈 시간 전까지 모든 물건을 체크해서 진열해야해서 정말 바빠요. 아침에 출근해서 창고에 가면 이런 팔레트가 매일 아침 적게는 6개, 제일 많을 때는 8개가 꽉꽉 채워져서 저희 지점으로 배달이 와 있거든요. 낑낑대면서 랩 같은 거 다 벗겨내고 L카에 품목별로 실어서 매장까지 옮겨가는 거죠. 저희 매장은 아침 10시에 오픈인데, 8시에 출근해서 오픈하기 전까지 다 비우고 매대에 가져다 놔야 해요. 아, 저희 마트는 2교대인데요. 오전 팀은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까지 근무하고, 오후 출근 할 때는 오후 3시 반부터 12시까지예요. 신선가공 쪽은 전부 6명인데, 오전조는 2명이 다 해요. 손님이 아무래도 오후에 더 많으니까 그렇게 인력배치를 한 건데, 매장 오픈 준비해야 하는 아침도 정말 정신이 없거든요. 물류가 우리 출근 시간 전에 배달 오기도 하지만, 전날 밤 10시에 한 번 더 오는데, 오후 근무 조에서 이걸 진열하고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전조가 출근해서 매장오픈 가능할 정도로 다 옮겨놔야 하니 엄청나게 바쁘지요. 예전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일 시작하고 그랬어요. 휴식시간이요? 요즘에는 하루 30분 쉴 수 있게 보장은 되어 있는데, 물론 잘 챙겨서 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 신선가공 쪽 2명은 중간에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잘 못해요."
진열도 경력자가 하면 다르다혜선씨는 마트 진열 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매장과 고용형태만 몇 번 바뀌었을 뿐 취급 품목은 계속 식품/신선가공 쪽이었다. 현재는 마포 쪽 대형마트에서 직고 용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2012년 가을, 이 지역에 마트가 새로 생기면서 회사는 혜선씨를 신선가공 쪽 '알바'에서 '담당'으로 계약을 변경해 주고 새 마트로 발령을 내었다. 나름의 승진이었다. 마트가 정식으로 입점오픈을 하기 전 매대를 설치하고, 같이 일할 팀을 짜는 등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그녀를 '개점공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트에 보면 파견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파견이었어요. ○○햄 소속으로, 대형마트는 아니고 동네에 있는 큰 슈퍼마켓으로 파견되어 1년 정도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일 잘한다면서 영등포에 마트 들어서는데 거기서 일해 보겠느냐고 하대요. 그때부터 대형마트 파견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 ○○라면으로 옮겼는데 한 2년 정도 일하다 본사에 서 라면 매출이 별로 안 좋다면서 전체 파견직 줄인다고 하기에 또 그만두었어요. 그때 완전히 그만두려고 했는데, 당시 마트 우리 담당 선임님(관리자)이 '여사님 그만두지 마세요. 알바로 쫌만 참고 계시면 신선가공 담당으로 올려드릴게'라고 해서 그 약속 믿고 또 계속 일했어요. 그러다가 여기 새로 지점이 생기면서 이쪽으로 온 거예요. 여기 매장이 다른 데에 비해 크지는 않아도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라 고객 수가 정말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물류양도 많고, 매대도 수시로 빨리빨리 채워 넣어 줘야 해요. 게다가 저희는 '유통기한'도 체크해야 하지요. 마트 일이라는 게 힘들어서 가뜩이나 안 해 본 분들은 오래 버티기 힘든 일인데, 이 일은 더 그렇죠. 유통기한까지 있어 매대 상황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해야 하니 신경이 더 쓰이지요. 물건 채워 넣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도 다 노하우가 있어요. 배치하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시야도 넓어야 일을 '잘' 할 수 있어요. 처음 들어오신 분들은 매장확인 할 때 백이면 백, 우유 빈 곳, 치즈 비어서 빵꾸난 곳 딱 그거 하나만 보고 와서 빈 제품 그거 딱 하나만 깔고 오시죠. 근데 경력이 쌓이면 다르죠. 이를테면, 한번 딱 둘러볼 때 한 매대에 있는 제품 전 부가 한눈에 들어와요. 어떤 물건이 비었고, 얼마큼 어떻게 추가 진열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하는 거죠. 아침에 엄청나게 바쁘다고 그랬잖아요. 그때 이렇게 시야가 넓은 사람이 진열을 맡으면 오픈준비가 훨씬 원활하죠. 그리고 물건이 잘 팔리게 하려면 솔직히 진열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매대에서 고객님들 눈높이 라인을 '골든라인'이라고 하는데 여기를 중심으로 물건을 어떻게 진열할지 짜임새 있게 잘 판단해야겠죠. 잘 나가는 물건이나 유통기한 짧은 거 위주로 돌아가면서 잘 배치해 주는 것도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잘할 수 없어요." 마트 노동 그리고 직업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