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홍영우/보리
그런데 말이지요, 시어머니는 새색시를 나무라기만 합니다. 왜 불씨가 꺼졌는가를 헤아리거나 살피지 않고 새색시를 꾸짖기만 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불씨를 안 꺼뜨리고 이었는데, 새색시 때문에 집안이 무너지겠다면서 울고 불고 부아를 냅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새색시가 일어나 부엌에 내려가 보니 불씨항아리에 담은 불씨가 꺼져 있지 않겠어? "아이쿠, 이를 어째!" 새색시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어. (8쪽) 백 해이든 이백 해이든, 또 오백 해이든 천 해이든, 불씨를 안 꺼뜨리고 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씨는 하루아침에 꺼질 수 있습니다. 불이 꺼졌으면 어떡해야 할까요? 다시 피우면 돼요. 불을 지펴서 밥을 끓여 먹을 수 있다면, 불은 언제이든 다시 지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처럼 성냥이나 라이터나 가스불이 없을 뿐, 불을 지피는 길을 아니까 아궁이에 불을 땝니다. 들이나 마당에서도 모닥불을 지필 수 있어요.
시어머니가 새색시를 나무라는 까닭은 '며느리로 들어온 가시내'가 오래도록 불씨를 안 꺼뜨린 '발자취(역사)'를 새색시가 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불씨를 꺼뜨리면 참말 큰일이 일어날까요?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큰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큰일을 일으킨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씨는 무척 소담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도 사위도 모두 애틋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불씨는 무척 아낄 만합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도, 아이들도 모두 아낄 숨결이요 목숨이며 한집 사람들입니다.
기둥 한쪽이 무너졌으면 다시 세우면 됩니다. 지겟다리가 부러졌으면 새 다리를 받치면 됩니다. 논둑이 무너졌으면 다시 쌓으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