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가족 사진.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식 걱정을 줄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김재훈
'창성전자'. 식육점을 그만두시고 아버지께서 시작한 공장의 이름입니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몇몇 아주머니들과 아버지와 함께 근무하셨고 저와 누나는 주말에 가끔 놀러 갔었습니다.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군청색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몇 대 있었고 어머니는 그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복되는 동작을 몇 시간 동안 계속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집에서 멀었던 이 공장 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아버지는 집 앞 상가 1층에 새로 공장을 열었고 어머니는 이곳에서도 함께 일하셨습니다. 이른 새벽 일어나셔서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출근, 점심 때 다시 집에 와서 가족들의 식사를, 그리고 다시 공장으로 가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늘 밝게 맞이해주던 어머니는 한쪽 눈을 가리고 힘들게 걸어와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왔니?""엄마, 눈이 왜 그래? 다쳤어?""응~ 일하다가 납 물이 눈에 튀어가지고..."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하셨던 일은 자그마한 모터에 달린 구리선의 일부분을 뜨거운 납 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는 작업이었는데 그만 눈에 뜨거운 납 물이 튄 것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맨 살에 닿아도 엄청 뜨거운데, 눈에 튀다니....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시력을 회복하셨고 그 후로도 계속 일을 하셨습니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언제나 누나와 저는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일 그만하셨으면 좋겠다.""맞아, 엄마 일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려면 누나랑 나랑 얼른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지?"그렇게 누나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함께 일을 하셨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고 아버지는 잠깐 에어컨 관련 일을 하시다가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 멀리 있는 공장으로 일하러 가시게 되었구요. 어머니가 새롭게 들어간 공장은 참으로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토요일도, 심지어 일요일도. 평일에는 야근까지. 편히 쉬는 날이 없으셨죠. 심지어 공장이 멀어서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도 단 하루도 가족의 아침을 챙기지 않은 적이 없으셨습니다. 힘들고 피곤해도 아침은 먹어야 한다며 가족들의 아침을 챙겨주시고는 머리도 덜 말리신 채 공장 버스를 타야한다고 뛰어 나가셨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16층까지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시간을 단축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급히 달려가다가 넘어진 적도 있으셨죠. 이런 생활을 10여 년 넘게 해오셨습니다.
"엄마, 누나랑 나랑 이제 돈 벌잖아. 이제 일 그만둬. 쉬어도 된다니까~""쉬면 뭐하니~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너랑 누나랑 결혼도 해야 되고, 생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다녀야지.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 너도 열심히 해!" "우리 가족만 건강하면 엄마는 바라는 것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