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공법으로 살린 넓은밭 도랑
김병기
칠갑산에서 산꽃마을 밑까지 '넓은 밭' 도랑이 흐른다. 총 2.4km의 실개천인데 이중 마을을 지나는 800m 구간은 지난 2001년에 시멘트로 발랐다. 도랑이지만 우기를 제외하고는 시멘트 바닥이 거의 말라 있었다. 급경사여서 물이 머물 새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철광석 산지였다. 도랑 곳곳에서 시뻘건 녹물이 흘렀다.
2010년에 푸른 충남 21 자연생태 분과 위원이었던 복 대표가 장 이장을 만나서 제안을 했다.
"도랑 한번 살려볼래유?"볼썽사납던 도랑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장 이장은 맞장구를 쳤다. 푸른 충남 21이 제안한 프로젝트였다.
"도랑 살리기 사업은 기본이 4000만 원입니다. 굴삭기를 불러 시멘트를 다 걷어내고 듣도 보도 못한 큼지막한 바윗돌을 옮겨놓으려면 그 정도 비용이 듭니다. 2008년에 한 단체에서 자연형 하천 공사를 했는데 40m 구간을 바꾸는 데 그 돈이 들었습니다."복 대표의 말이다. '넓은 밭' 도랑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사를 하면 3억 원이 든단다. 시멘트를 몽땅 걷어낼 경우 무려 525톤의 산업 폐기물이 나온다. 하지만 복 대표는 시멘트는 그대로 두고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1천만 원에 해결했다. 일명 '통나무 공법'. 그가 직접 설계했다.
시멘트 바닥에 두 개의 철근을 박은 뒤에 통나무 3개를 쌓아올렸다. 60cm 높이다. 또 표고차 1m 간격으로 800m 구간 곳곳에 10여 개의 통나무 보를 설치해서 계단식 도랑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통나무 보 곳곳에 퇴적토가 쌓였고, 물이 채워졌다. 그곳에 갈대, 부들 등 각종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 가재와 버들치, 갈겨니, 돌고기, 미꾸라지가 돌아왔다. 생존이 불가능했던 메마른 시멘트 도랑이 생명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공사업체를 부르는데, 이곳은 주민들이 참여했습니다. 포클레인에 돈을 주는 대신 주민들에게 인건비를 줬죠. 학익고등학교 학생들이 통나무를 날랐습니다. 청양고등학교 학생들도 자원 봉사했죠. 한 달 반 만에 공사를 뚝딱 해치웠습니다. 하-하-하-." 천진난만하게 웃던 그가 이철재 부위원장을 데리고 간 곳은 산꽃마을 입구의 조그만 연못이다. 잘린 버드나무가 몰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 이곳은 이 마을 이장님과 복 대표의 또 다른 실험실이다. 일명 '버드나무 공법'.
"시멘트 바닥을 자연형으로 바꿨는데, 양쪽 호안은 그대로입니다. 이게 그 대체품입니다. 물 속에 잠긴 버드나무 토막에서는 뿌리가 납니다. 위쪽으로는 잎이 나죠. 이걸 호안에 설치하면 침식방지, 수질정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시멘트 호안을 버드나무가 덮어버릴 겁니다."'넓은 밭' 도랑 살리기는 지난해 10월 SBS 물환경 대상을 받았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당시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이철재 부위원장은 "도랑에서 생태와 문화가 만났고, 잃어버렸던 기억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사실 도랑을 살린 건 '돈'이 아니라 끈끈한 '마을 공동체'였다.
[장광석 이장의 마을 살리기] 나이든 농부들이 숲 해설사로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