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명에서 퍼져나간 메르스 공포

등록 2015.06.04 20:04수정 2015.06.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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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바이러스에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병을 치료하는 병원(病院)이 병을 얻는 병원(病原)이 되어버렸습니다. 6월 3일자로 1300명이란 사람들이 격리되었고 35명의 환자가 발생, 2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100여 곳의 학교와 유치원 등이 자체휴교, 휴원조치를 내렸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직 선선한 서울의 저녁거리에는 오가는 행인의 발길이 확 줄었습니다.

부모들은 마스크를 쓰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며 억지로 마스크를 씌웁니다. 세월호 참사 때 겪었던 허무함과 공허함, 그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 듯합니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여지없이 뒤따르는 부실대응. 이젠 지겹습니다. 마치도 패망 직전의 월남정권을 보는 것만 같은 이 착시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메르스는 중동지역에서 전파된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 질환입니다. 2012년 9월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낙타, 박쥐와 같은 동물로부터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동은 귀빈에게 낙타고기를 대접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대체로 그렇듯이 메르스도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치사율이 40%에 달했다는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국민들이 공포에 빠지고 있습니다.

메르스는 잠복기(2일~14일)후에 발병하는 특징을 갖추고 있어 추적이 어렵습니다. 잠복기에는 본인이 몸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증식되는 것을 모르기에 대상자들을 모두 격리해야 합니다. 현재 메르스 확진환자가 경기도 평택에서 시작해서 수원, 그리고 대전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격리자가 1300명에 달하는 것도 메르스의 잠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복기가 2주란 주장도 구체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발병하면 38℃ 이상의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과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한 명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다


메르스 사태는 단 한 명의 메르스 감염자로부터 일파만파 확산되었습니다. 4월 18일부터 5월 3일까지 한 남성이 중동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는 5월 4일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였는데 10여일이 지난 5월 12일부터 기침이 시작되어 병원에 다니다 5월 15일에는 결국 입원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메르스 바이러스는 함께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에게 확산되었습니다. 그 병실에 머물렀던 환자의 가족과 주변 환자들, 급기야 의료진까지 2차 감염되었습니다.


차도가 없어 종합병원으로 옮긴 그는 5월 20일에야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로 메르스 환자는 연이어 발생하였고 2차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이 격리되면서 격리자는 6월 3일까지 1300명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였습니다.

5월 30일에는 메르스 환자가 머물던 병원이 휴원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6월 3일에는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의 하사관이 메르스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같은 부대 소속 100여 명이 현재 격리 조치됐습니다.

이제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자는 평택에서 수원, 대전을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한민국은 중동을 빼면 메르스 환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안게 되었습니다.

전염력 오판

이처럼 메르스 바이러스가 일파만파로 확산된 것은 무능한 보건당국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보건당국은 메르스 발생 초기에 병의 전염력을 앝잡아보았습니다. 중동과 미국의 발표자료만 믿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환자 1명당 1명이 채 안된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차 감염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만 무려 12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8명은 첫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지 않았지만 같은 병동에 입원했다가 감염되었습니다. 이들은 아예 보건당국이 정한 자가격리 대상에서도 빠져 있었습니다. 자가격리 대상을 첫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사람과 그 보호자로 국한하다 보니 같은 건물 또는 같은 층 입원 환자는 처음부터 격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1차 감염자는 1명인데 무려 29명의 2차 감염자가 확진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 감염자가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보건당국의 안이한 대응과 오판이 부른 인재입니다. 메르스 전염에서 3차 감염자의 발생은 매우 중요합니다. 메르스의 모든 2차 감염자가 정상인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2차 감염자와 더불어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마땅히 격리 수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위험성은 실제로 메르스 바이러스가 평택을 떠나 수원으로, 대전으로 지리적으로 확산되는 데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6월 2일에는 서울의 격리대상자가 전북지역에서 골프를 치고 온 사실이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6월 2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격리대상자가 식사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는 황당한 소식이 속보로 타전되었습니다. 격리대상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도 없는 형편입니다.

6월 1일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은 "첫 대상 의료기관이 중소병원급 규모라 감염 관리에 충실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지금 벌어진 상황은 지역사회에서 무작위로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진 게 아니라 다 의료기관이라는 공간적으로 제한된 곳에서 발생한 일종의 군집 발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의 군집발생 주장도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가지 병을 얻으려고 병원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병원이 메르스를 퍼트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보건당국의 안이한 대응 때문이었습니다.

중국과의 외교문제로 확산

메르스 사태는 메르스 증상을 보인 환자가 중국출장을 강행하다 중국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한-중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습니다. 1차 감염자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의 아들 K씨가 발열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보건당국은 이 남성에게 출장 취소를 권고하는데 그쳤습니다. 문제는 그가 결국 중국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는데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한 마디로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은 메르스와 관련해 한국인 5명을 포함해 67명을 격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위생당국은 하부 기관에 메르스 대응 관련 공문을 보내고 관문인 베이징 수도공항의 검역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6월 3일 <서울경제>보도에 따르면, 홍콩 봉황망(鳳凰網)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네티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80% 이상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K씨가 중국으로 출장을 간 데 대해 "한국정부의 중대한 실수이고 마땅히 해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중국과 홍콩이 메르스 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2003년 중국을 강타하였던 '사스파동' 때문입니다. 당시 사스로 중국과 홍콩에서만 775명이 목숨을 잃었고, 베이징이 봉쇄되는 상황까지 겪었기 때문입니다.

렁팅훙(梁挺雄) 홍콩 위생방호센터 총감은 "한국 정부에 K씨를 현지 치료한 두 의료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면서 한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여행객을 상대로 메르스 관리를 강화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 공포심을 느낀 중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여행을 연이어 취소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2500명 가량의 중화권 관광객이 한국관광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성수기를 앞두고 있는 관광업체는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셈입니다.

대책없는 방역

메르스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강타한 것은 대한민국의 방역체계가 그야말로 한심하기 때문입니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은 "에볼라 사태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치료제가 없다, 백신도 없다, 치사율이 높다는 세 가지 문장이 만들어낸 공포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며 "이는 신종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했습니다.

"치료제가 없다"는 말이 메르스 공포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의 말마따나 제약회사들은 대체로 신종 전염병의 백신 만들기를 꺼립니다. 백신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지만 전염병이 유행하지 않으면 백신이 팔리지 않을 것이므로 연구개발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가 전염병 백신개발에 뒷짐 지고 있다 보니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낳게 된 것입니다.

치료제가 없으면 방역이라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보건방역체계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5월 31일 보건의약단체 간담회에서 관계자들은 "메르스 환자와 밀접 접촉해 격리된 사람들이 관할 보건소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립니다"라며 "몇 시간이면 되는데 요즘 전염병 관리를 하루 꼬박 걸리게 하느냐"며 "검사 시간을 지연시킨 것이야 말로 메르스 1차 관리의 주범이라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는 초기방역에 실패해 감염이 확산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그대로 빠져들었습니다. 전형적인 방역 후진국의 모습입니다.

전염병의 방역을 이윤에 얽매인 사립병원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방역은 바로 보건당국이 모든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합니다. 국민이 나라에 세금을 내고 공직자를 선거하는 이유는 그들을 믿고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전염병과 관련된 방역대책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SBS>는 6월 2일, 미국 질병대책본부는 전염병의 역학조사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질병 수사관이 지난 60년간 4000명인데 한국은 20명 수준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한국의 방역당국은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똘똘 뭉쳐있는 듯합니다.

대책은 국민 스스로

세월호 사건으로 대형재난사고에 대한 정부의 안이함을 질타한 것이 바로 작년이었습니다. 이제는 메르스 사태로 방역대책이 질타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제대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메르스에 대한 공포심이 일파만파 확산된 원인은 바로 국민들이 국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정부를 가장 믿지 못하고, 언론을 믿지 못하며 옆 사람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국민 스스로가 알아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럴 것이면 우리는 군대는 왜 가고 세금은 왜 내나요. 정치인들의 선거철 구호는 왜 들어야 합니까.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술자리의 푸념이 정말 예사롭지 않습니다. 정말 단 1명이 일파만파로 퍼뜨린 메르스 공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원고는 <우리사회연구소>에 함께 게재된 원고입니다.
#메르스 #방역 #전염병 #격리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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