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작가정신
이생진님이 빚은 시집 <거문도>(작가정신,1988)를 읽습니다. 이생진 님은 거문도에서 고즈넉히 지내면서 시를 길어올립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아니면서 거문도에서 지냅니다. 거문도가 이녁 보금자리가 아니면서도 거문도에 머물면서 바닷바람을 마십니다. 그저 거문도를 마음으로 담아서 사랑하려는 손길이기에 거문도에서 시를 씁니다. 그예 거문도를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껴안으려는 하루이기에 거문도에서 시를 읊습니다.
..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 (혼자 피는 동백꽃)이생진님은 '성산포'를 노래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젊은 날부터 '바다'를 노래했고, '섬'을 그렸으며, '갈매기'와 놀았습니다. 그러니, <거문도>라는 시집을 내놓을 만합니다. 그러면, 거문도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거문도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이야기가 마음으로 하나둘 스며들었을까요.
"담쟁이덩굴이 소나무를 감고 /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구나 / 거기서 하늘이 보이느냐 / 줄기가 있으면 너랑 나랑 감고 올라가 / 하늘을 보자꾸나(가는 곳마다 무덤이)" 같은 이야기처럼, 섬에서 담쟁이덩굴을 보고, 소나무를 보며, 하늘을 봅니다. 담쟁이덩굴이랑 함께 하늘을 보고, 소나무랑 함께 바닷바람을 마십니다.
시 한 줄은 풀줄기처럼 뻗습니다. 시 두 줄은 풀꽃처럼 피어납니다. 시 석 줄은 하늘처럼 파랗게 열립니다. 시 넉 줄은 바닷내음을 물씬 실어나르는 바람처럼 흐릅니다.
.. 고개 넘어가다가 돌에 챘다 / 그래서 무릎에서 피가 났다 / 돌이 내게 돌 던질 리 없으니 / 이는 돌의 잘못이 아니라 / 내 잘못이다 하고 지나가니 / 아무 탈이 없다 .. (돌의 성품)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서 늙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랐으나 거문도하고 사뭇 먼 곳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문도라는 이름을 한 번조차 못 들으며 사는 사람이 있고, 한두 차례 거문도를 마실한 적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