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한 소풍.
Dustin Burnett
그런 애가 동해로, 남해로 놀러 가는 봉고차 어딘가에는 늘 끼어있었다. 수줍어도 여행은 가고 싶으니까. 엄마 아빠가 동행한다면 친척들 단체 여행에 따라가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말했다시피 우리 가족은 친척 단체 여행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엄마 아빠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수줍음 많은 내가 여행에 가겠다고 따라붙는 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갔다. 수줍음 때문에 여행을 안 가는 건 좀 억울하니까. 매년 여름. 나는 엄마 아빠 없이도 당당히, 봉고차 구석에 쪼그려 앉아 코로는 고모부들의 고약한 담배 연기를 마시며 귀로는 잔인하도록 시끄러운 뽕짝을 들으며,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바다를 보러 갔다.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고모들은 할머니를 모시고 통영에 간다고 했다. 통영. 토옹여엉. 동그라미가 많아 통통대는 통영의 발음이 좋았다. 하지만 내 신경을 건드린 건 통영의 발음 따위가 아니었다. 고모들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했다. 비행기라니! 비행기! 나는 오빠를 졸랐다. 가자. 우리도 가자.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오빠도 비행기를 타 보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빠는 비행기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오빠의 관심은 고모가 떠난 고모 집에 남아 사촌오빠들과 비밀스러운 작당을 하는데 쏠려있었다. 하여간 오빠들이란. 나는 가지 않겠다는 오빠를 졸라 일단 고모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성남 달동네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할머니 댁 방구석에 언제나처럼 말없이 앉아, 눈치를 살폈다.
"수지 너 갈 거냐?"
"……."
네. 갈래요. 미친 듯이 가고 싶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싶습니다. 오빠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오빠를 흘겼다. 나에게는 오빠가 필요했다. 딱히 오빠와 여행을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눈치가 보여서였다. 아무리 고모들이고 삼촌들이지만, 비행기씩이나 타고 가는 여행에 부모 없이 애 혼자 달랑 따라간다는 건 열 살이었던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염치없는 일이었다.
아. 고모 중 한 명만 제발 가라고 졸라줬으면. 우리 수지랑 비행기도 타고 통영 바다도 보고 싶다고 말해줬으면. 할머니가 우리 수지가 가지 않으면 자기도 가지 않겠노라고 노인네 특유의 땡깡을 부리며 나에 대한 애정을 과시해줬으면. 고모들은 바닷가 콘도에서 먹을 김치와 쌀, 고추장 따위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모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 고추장이 되고 싶다. 고모들은 나는 빼고 가도 고추장은 안 빼먹고 데려가겠지. 할머니가 세 번째로 물었다. 수지 너 갈 거냐?
끄덕.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끄덕임.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고작 열 살이었던 내 머릿속에 삶이 비행기 한 번 못 타고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삶은 내 계획과는 달리 어떻게든 흘러갈 수 있고 갑자기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걸까. 그리하여 나는 고모들과 김포공항으로 가는 데 성공했다. 생애 첫 비행기를 타는데 드는 노력이 고작 고개 한 번 까딱하는 거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 참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