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동아투위는 동아일보 옛 사옥에서 프레스센터를 왕복하며 6개월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동아투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는 군사 독재 정권 때 언론이 탄압 받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 시절 정부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직원을 언론사에 상주시켜 보도를 통제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여기에 항의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다. 이 직후 동아일보는 갑작스레 무더기 광고 해약을 당하면서 일부 광고 지면을 백지로 내보내야 했다.
이듬해 회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수많은 기자들을 해고했다. 해직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아래 동아투위)'를 꾸려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대량 해고 뒤에야 동아일보의 광고 사정은 나아진다. 2008년 진실화해위는 이 일을 두고 "국가는 동아일보사와 언론인들을 탄압, 언론인들을 강제 해임시켰고 동아일보사는 정부 압력에 굴복했다"며 국가와 동아일보사의 사과 등을 권고했다.
동아일보사는 이 결정에 불복, 2009년 3월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그런데 2013년 1월, 대법원 2부(주시 이상훈 대법관)는 진실화해위 결정은 행정 처분이 아니라 행정 소송 대상이 아니라던 하급심 판단과 달리 진실화해위 결정은 행정 처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파기 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형남 부장판사)도 같은 이유로 이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심리를 맡은 1심(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 부장판사)는 '정권의 요구대로 언론인을 해고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지난해 4월 진실 규명 결정을 취소했다. 2014년 9월 24일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행정5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의 판단도, 29일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진실화해위 결정을 취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해직 언론인들이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과도 직결됐기 때문이다.
동아투위 관계자들은 2009년부터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국가가 잘못하긴 했지만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간이 지났다(소멸시효 완성)'던 하급심 판결에 속앓이를 했던 이들은 지난해 12월 24일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가 진실화해위 결정을 바탕으로 2심 판결을 깨고 원고 14명에 한해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정부가 동아일보에 압력을 넣었다'는 진실화해위 결정은 29일로 무효가 됐다. 사법부는 끝내 국가는 잘못도, 책임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해직 언론인 가운데 일부나마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따른 피해를 인정받고, 적절한 배상과 명예 회복이 이뤄지길 원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바람도 하루 아침에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렸다.
"법도, 양심도 없는 판결... 놀랍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