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편곡해 부른 '솔아 솔아 푸른 솔아'아카펠라로 도전한 이 노래는 아이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민중가요다. 노래하는 아이들 뒤로 피리를 불고 있는 윤상원 열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서부원
내친 김에 후배에게 짬을 내 이번 행사가 어떻게 기획되고 진행됐는지 설명해주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심 아직도 5.18을 색안경 쓰고 보려는 척박한 서울 땅에서 이런 추모 음악회를 시도라도 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4년 동안의 경험으로 확신하건대, 밋밋한 민중가요를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그저 들어본 적이 없으니 낯설어할 뿐이다.
올해는 윤상원 열사가 10대 때부터 삶을 마감한 서른 살까지 쓴 '일기장'을 주제 삼아 행사를 기획했다. 추모 사업회에서 묶어낸 <윤상원 일기>의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대학 졸업 후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귀향을 하고, 야학 교사가 되어 힘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만나는 삶의 궤적을 노래에 담았다. 그들과 함께 불의한 세상에 맞서 희망을 노래했던, 그 순결한 영혼을 어린 후배들에게 보여주려 애썼다.
'해는 점점 뜨거워지는데, 점점 나태해져서야 되겠느냐. 해처럼 열기를 품자!' 그가 스물일곱 되던 해 5월 27일에 썼던 일기의 내용이다. 그렇듯 하루하루 치열한 성찰의 삶을 산 그는, 꼭 세 해 뒤 같은 날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화려한 휴가'를 즐기러온 공수부대의 대검에 몸이 찢긴 채 서른 해의 짧은 생을 마쳤다. 그렇게 그는 5.18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5월 광주'를 떠올리는 '오월의 노래' 독창을 시작으로, 1990년대 민중가요의 신세대를 표방한 록그룹 천지인의 '청계천 8가'와 '희망을 위하여'가 이어졌다. 윤상원 열사가 들불 야학에서 동고동락한 가난한 이웃들의 삶, 그리고 그들과 희망을 노래하며 맞잡은 손을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인 곡들이다. 태어나 처음 듣는 낯선 노래였을지언정 아이들은 노랫말을 음미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가며 공감했다.
몇몇 아이들은 음악 선생님의 지도로 '솔아 솔아 푸른 솔아'를 아카펠라로 소화해냈다. 조금 화음이 엉성하고 고음 처리에 힘들어했지만, 아이돌 그룹의 노래만 불러온 그들에게는 대단한 도전이었고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곡은 대중가수 MC 스나이퍼에 의해 리메이크된 적이 있어선지, 객석에서 따라 부르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기실 이곡은 일기장에 '역경에 의연히 맞서자'고 적은 윤상원 열사의 다짐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라 할 수 있다.
교회나 성당의 성가로도 애용되는 '바위처럼'을 율동을 섞어 함께 부르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반전시킨 후, 어느덧 '제2의 교가'가 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행사를 갈무리했다. 특별한 객석도 마련되지 않은 40분짜리 스탠딩 야외 공연이지만, 끝나고도 아이들은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행사 직후 스마트폰으로 공연된 곡을 검색해 다시 듣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교실 스피커 통해 들려온 '청계천 8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