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뽑는 소년'가시를 뽑는 소년(Spinario Cavastina)’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청동 소년상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 중 하나입니다.
박용은
진지한 표정으로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뽑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소년. 실물과 가까운 크기의 사실적인 소년상을 보고 있노라니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신화 속의 위대한 신이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떠올리기 쉬운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상들. 그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동작과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린 소년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소년에 대해 흥미를 가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청동 소년상은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 중 하나로 고대 이래 수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을 인용했습니다. 특히 1500년경 이후 로마에서만 50여 개 이상의 복제품이 확인되었다 하니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실험들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년상 바로 옆방에는 그 유명한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의 청동상이 있습니다. 정식 이름은 '카피톨리노의 암늑대(Lupa Capitolina)'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 레무스는 형 누미토르의 왕위를 찬탈한 아물리우스로부터 티베르강에 버려진 뒤 '팔라티노 언덕'에서 아버지, 마르스(군신, 軍神)가 보낸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다가 성장하여 할아버지, 누미토르의 복위를 도운 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되죠.
하지만 권력은 형제 사이도 갈라놓나 봅니다. 로물루스는 약속을 어기고 자신이 세운 성벽을 뛰어넘었다는 구실로 동생 레무스를 살해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세트 신화도 그렇고 구약 성경의 카인과 아벨도 그렇고 형제 간의 비극은 고대 신화의 중요한 모티프였나 봅니다. 어쨌든 그렇게 권력을 독점하게 된 로물루스는 로마의 시조로 불리게 됩니다.
한편 쌍둥이의 어머니이자 누미토르의 딸이었던 실비아가 불의 여신 베스타의 신녀였기 때문에 로마 곳곳에는 베스타의 신전이 세워졌는데 오전에 만났던 '포로 로마노'의 베스타 신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