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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콜론,아라카와 히로무
이를테면, 시골에서는 '돈'이 나올 길은 없어도 '먹을거리'는 늘 넉넉합니다. 우리 집에 넉넉한 것을 이웃집에 주면, 이웃집에서는 이웃집에 넉넉한 것을 우리 집에 줍니다.
끝없이 주고받습니다. 도시에서는 매우 값지거나 비싼 먹을거리로 여기지만, 시골에서는 그저 흔하거나 너른 먹을거리입니다. 시골에서 어린 나날과 푸른 나날을 보내면서 '밥값'을 생각한 적이 없고, 도시로 나가서 혼자 살기 앞서까지 '감자나 고구마나 배추를 사다 먹는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기에, 남새 값이 얼마나 하는지 몰랐다는 아라카와 히로무 님입니다.
'먹는 데'에 돈을 쓴 적이 없다 보니, 도시에서 '먹는 데에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살림'을 겪으면서, 시골살이는 백성이면서 귀족이었네 하고 깨닫습니다.
- "무한의 물물교환! 갓 딴 백합 뿌리로 쑨 백합 단팥죽도 꿀맛이죠!" "꿀맛 정도가 아니라 백합 뿌리면 엄청 고급 재료잖아요? 백성의 탈을 쓴 귀족 같으니." "어머나, 그랬나? 백합 뿌리 같은 건 우리 집에서는 그냥 냄비째 식탁에 올라오는데. 멜론 같은 건 너무 먹어서 물리네. 오호호."(26쪽)"가족 경영으로 이 정도 선에서 대충 수지를 맞추고 있지요. 아니 뭐, 젖소에게 무리가 안 가는 정도로만 젖을 짜는 만큼 생산성이 낮은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요. 흉작이거나 큰 기계가 망가진 해에는 재정난이. 고로 우린 이런 귀족! 앞은 호화찬란, 뒤는 빈털터리. 특정 식품 관련해서만 특권 계급이라니까요!"(70쪽)
도시에서는 어느 고장 마늘이 맛나다거나 어느 고장 고추가 좋다거나 하고 따집니다. 그렇지만 시골에서는 '우리 집'에서 거둔 마늘이나 고추가 가장 맛납니다. 유기농이나 자연농이나 친환경을 따지기 앞서 '우리 집' 감자나 고구마가 가장 맛납니다.
수수께끼라고 할 만하면서도, 이 수수께끼는 아주 쉬워요. 내가 손수 흙을 갈고 살찌우고 보듬고 북돋우면서 돌본 먹을거리는 언제나 내 입맛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맛있습니다. 내 품과 땀을 들여서 가꾼 먹을거리는 참말로 언제나 내 몸을 일으키면서 사랑스레 어루만집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얼마 앞서까지 한국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살림집이 '홀로서기(자급자족)'를 했어요.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수 집을 짓고 옷을 기우며 밥을 지었습니다. 아주 마땅히 '내 보금자리'에서 밥과 옷과 집이 척척 나왔어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 한 그릇을 나누었고, 기쁘게 웃고 노래하는 삶을 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