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봉을 시작한 토종벌이 여왕벌을 둘러싸고 나무에 모였다.
지오리골토종
토종벌을 기르지 않는 농가는 이 시기가 절호의 기회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나무를 1미터 정도 길이로 잘라 가운데를 파내면 원통이 된다. 뚜껑을 만들고 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냈다. 토종벌통이 완성됐다.
농부는 양지바른 바위 아래에 벌통을 가져다 놓는다. 소똥은 필수다. 벌통 주위에 빈틈없이 소똥을 바른다. 그 냄새가 벌들을 유인하는 어떤 마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농부들은 예부터 그렇게 해 왔다.
토종벌 농가에서 미처 분봉하는 녀석들을 잡지 못한 벌들 그룹은 바위틈에 놓여 진 벌통에 둥지를 튼다.
"내가 키우던 벌이니 돌려주시오"라는 말을 한다면 그건 억지다. 주변에 토종벌을 키우던 농가가 유일해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관리를 소홀히 했거니 또는 멀리서 날아온 녀석들이겠거니 여긴다. 산골사람들의 순수한 정이다.
양지바른 곳에 놓아둔 벌통에 토종벌이 깃든 것을 확인한 농부는 밤이 되길 기다린다. 한밤중 완전히 어둠이 덮일 무렵, 농부는 지게를 지고 나선다. 벌들이 드나들던 입구를 막았다. 텅 빈 아래쪽엔 준비해 간 보자기를 둘렀다. 지게에 벌통을 진 농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장독대 옆, 미리 준비해 둔 널찍한 바위 위에 벌통을 내려놓곤 구멍을 열었다.
이튿날, 벌통 입구에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벌들이 모여 있다. 여왕벌을 제외하고 모두 밖으로 나온 듯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왜 자신들이 여기에 와 있느냐는 눈치다. 상황판단은 오래하지 않았다. 한 마리 두 마리가 벌통 주변에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이사한 집의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토종벌과 농부는 한 가족이 되었다.
희극이 있으면 비극도 있다고 했던가! 바위틈 벌통이 놓여 있던 자리엔 수십 마리의 벌들이 모여 있다. 왜 이곳에 모였냐고 물었다. 외박을 했단다. 순간 바람난 녀석들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전날 꿀을 찾아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른 녀석은 길을 잃어 이제야 집을 찾았다고 했다.
이사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강제로 봉지에 넣어 이사한 집 앞에 놓아두어도 이 녀석들은 급작스런 상황에 적응을 못한다.
바위 아래 모였던, 여왕벌을 잃은 벌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날았다. 남의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외톨이가 된 녀석들은 꿀을 따 목숨을 연명할 줄도 모른다. 여왕이 사라진 슬픈 현실, 아직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나뭇잎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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