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26주년... 우리도 변해야 한다

[주장] 투쟁 못지않게 자기성찰도 함께해야

등록 2015.05.25 15:46수정 2015.05.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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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나는 지방 중소도시의 고3 학생이었다. 이웃 학교의 한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했다. 수학을 가르친 그 선생님은 실력과 덕망을 갖춘 분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그 학교 학생들이 시내를 돌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나는 그때 '전교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지금 나는 40대 중년교사가 됐고, 전교조 소속 교사이다. 거창한 이념이나 투쟁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타고난 소심한 성품 때문에 교육운동에 제대로 동참하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불량 노조원'이다. 다만 경쟁과 시장만능주의의 물결 앞에서 교육현장 만큼은 '사람 냄새 나는 공동체'로 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검은 손'으로부터 교육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전교조에 몸을 담고 있는 이유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회운동은 사상누각

전교조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것도 수만 명이 모여 있는 거대조직이다. 그러니 왜 문제가 없겠나? 오해 받을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지탄도 받는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에 대한 자세일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을 해보자. 목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교사들이 '연가투쟁'이라는 과격한 구호를 내걸고 행동에 나설 때 그것에 동의할 시민들이 몇 명이나 있겠나? 그것에 동의할 학생, 학부모들이 몇 명이나 있겠나? 한국사회에는 교직에 대한 '특별한 관념'이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이 아닌 '사실'의 영역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회운동이 무슨 힘을 낼 수 있겠나?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전교조 소속교사는 11명이다. 30명이 넘었던 노조원 수가 1/3로 줄었다. 그 가운데 20~30대 젊은 교사는 한 명도 없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배가 나오고, 이마가 훤한 40~50대 아저씨들 뿐이다. 다른 학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20년 뒤 전교조는 자연 소멸된다는 얘기이다. 전교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수구정치세력이 아니라 전교조 내부에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교사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데려다 가르친다. 따라서 학생, 학부모 가운데 단 1%가 전교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교조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다. 실수도 할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진지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야 한다. '도덕적 우월감', '리버럴 강박증'에 사로 잡혀 있지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몇 년 전, 전교조 기념행사에 사회원로들의 영상 메시지가 소개됐다. 진보지식인 한완상 선생은 '초심을 잃지 않는 전교조가 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2015년 청와대와 전교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옛날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새마을운동 하던 1970년대를, 전교조는 학생운동 하던 1980년대를 그리며 사는 것 같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런 가치들이 필요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에는 오늘에 맞는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전교조도 오늘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마침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전교조 #연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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