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내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갈무리.
유니버설픽쳐스
192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내시는 어려서부터 수학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17세 때 카네기멜론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5년 후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게임이론에 관한 '비협력 게임'을 썼고, 이것이 노벨상을 안겨줬다.
당시 내시를 지도하던 카네기멜론대학 교수가 그의 대학원 진학을 위해 프린스턴대학 수학과에 보낸 추천서에는 "이 학생은 천재다(This man is a genius)"라는 한 문장만 씌여 있어 더욱 유명세를 탔다.
게임이론이란 한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미치는 상호작용과 전략을 통해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 연구하며, 각 참여자가 상대방의 전략을 놓고 자신에게 최적의 전략을 선택한 집합의 균형이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다.
내시가 연구한 게임이론은 경제학, 군사학 등에 큰 영향을 주며 수많은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게임이론의 토대를 세운 내시는 불과 약관의 나이에 학계의 스타로 떠오르며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시는 화려한 명성이나 업적과 달리 자신의 삶조차 돌아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였다.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기도 전에 20대부터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30년 가까이 착란과 환각 속에서 살아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내시 부부29세라는 젊은 나이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종신 교수로 임명된 내시는 동료 알리샤와 결혼하며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려 했지만, 당시 수학계 최고의 난제이던 '리만 가설'을 푸는데 몰두하며 증세가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하고 MIT에서도 쫓겨난 내시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병간호에 지친 부인 알리샤도 곁을 떠나면서 그의 삶은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시의 거듭된 간청에 알리샤가 돌아와 극진히 곁을 보살피면서 서서히 정신분열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학계에서도 재기에 성공하며 마침내 논문 발표 후 45년이나 흐른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정신분열증을 겪는 천재 수학자와 그의 곁을 지킨 아내의 일대기는 2001년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세상에 알려졌고, 역경을 극복한 내시 부부의 사랑에 찬사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영화가 내시의 괴팍했던 삶을 너무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작품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명작으로 남아있다.
노벨상과 영화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내시는 프린스턴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부인과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이날 교통사고로 부인과 함께 세상을 뜨며 영화 같았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뷰티풀 마인드' 존 내시 부부, 교통사고로 사망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