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지 전경 하얀 코스모스와 현무암돌의 경계를 두고 못위에 연꽃들이 피어있다.
정선애
남과 여가 만나니 화촉을 밝히는 것도 당연한 일. 성산읍 온평리에 번창함의 시작을 알리는 못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삼신인과 세공주가 혼례를 올렸다는 이 곳은 삼성혈과 함께 탐라국 시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개벽신화의 중심지인 혼인지(婚姻池)다.
중산간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봉천수로 된 이 연못은 웬만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아 옛날 온평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한 생명수의 원천이었다.
1972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혼인지는 올레 2코스의 후반부에 포함 된 장소지만 주변관광지인 성산일출봉, 표선 해비치 해변, 섭지코지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래서 쉼의 찰나를 느끼고 싶다면 느릿한 걸음으로 한 바퀴 휘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다.
혼인지로 들어서면 관리사무소와 화장실이 기와형태로 지어져 있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만발한 나무 한 그루가 바람사이로 흔들리고, 매끈한 돌길 옆에 사람의 손길로 심어진 쑥의 향이 새콤한 혼인지 입구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 반, 호기심 반이 마음에 차올라 더듬더듬 더딘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한 여름 7~8월에나 핀다는 진분홍, 연분홍 연꽃들이 따뜻한 제주 날씨에 속아 지금 5월 중순께부터 얼굴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