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기자 안나 아렐이 히잡과 젤라바(북아프리카와 아랍국가에서 여성이 입는 두건과 긴 소매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영상통화 서비스 스카이프에 접속해 IS 대원 아부 빌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글항아리
늦은 저녁, 온라인 화상 채팅을 통해 두 남녀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여자는 검은색 베일을 뒤집어쓰고 남자는 금빛이 도는 선글라스를 끼고 소파에 불량스럽게 앉아있다. 남자는 간절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나와 결혼해준다면 널 여왕처럼 모실 거야. 그들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지 48시간 만이었다.
무슨 미팅 주선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다. 남자는 38세의 간부급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이고, 여자는 20살의 '멜로디'란 프랑스 소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는 '멜로디'를 연기하는 30세의 프랑스 여기자 '안나 에렐(가명)'이다.
"너의 시타르와 부르카 안에는 네가 원하는 옷 아무거나 입어도 돼. 예를 들어 가터벨트나 망사스타킹이라든지. 네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 말이야. 자긴 어떤 속옷을 좋아해?" -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에서날이 갈수록 대화는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그에 따라 남자의 감언이설도 더해갔다. 오 자기야, 아름다워, 네가 여기에 온다면 무엇이든지 해줄게, 모든 사람들이 널 받들어 모실거야. 가끔 낮 동안 이교도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며 자랑도 늘어놓는다. 결국 자기 멋대로 혼인을 선고하고 "숫처녀냐"고 묻는다. 그게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멜로디'의 계정에는 IS행을 고민하는 소녀들의 질문이 쌓여간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무게감 있는 질문들보다는 시시콜콜한 궁금증에 가깝다. '티팬티'를 가져가도 되느냐는 질문도 있다. 가관이다.
여린 '멜로디'는 사랑 공세를 퍼붓고 장밋빛 미래를 그려주는 지하디스트에게 금세 빠져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남자에게는 이미 세 명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다.
취재를 위해 20살 소녀를 연기한 프랑스 여기자 '멜로디'를 연기한 '안나 에렐'은 전 세계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왜 IS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IS의 포섭이 이뤄지는 SNS를 통해 그들과 접촉했다.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자스민 공주를 프로필 사진에 넣어 '멜로디'란 가상의 인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이어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IS의 선동 슬로건이나 영상들을 게시했다. 나이는 20살, 국적은 프랑스, 현재 이슬람으로 개종한 상태. 그가 준비한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