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피강 다리들 중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오코넬 다리
김현지
다른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제한된 시간에 많은 관광지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실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선 경험해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의 결정적인 쉼터인 공원이나 다리의 경우에도 여행자에겐 그곳이 유명하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공원이나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잠깐 휙 둘러본 후 다음 여행지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아닐까? 여행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행의 목적이 달라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유명 관광지를 수박 겉핥기 하듯이 돌고 사진을 마구 찍어댔던 여행은 그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우연히 길을 잃었다가 발견했던 장소, 다리가 아파서 쉬어갔던 공원, 우연히 걸었던 산책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잠깐의 대화들... 그렇게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일상의 경험들이 그 여행을, 그 장소를 더 기억나게 했고,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줬다.
여행에 쉼표 제공해준 더블린의 다리들아일랜드의 대부분의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다. 더블린도 예외가 아닌데 리피강(Riffy River)을 중심으로 남쪽, 북쪽으로 나뉘어 있다. 남쪽은 북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구역이 많고, 집값이 비싼 편이다. 또 유명 관광지들도 대부분 강남에 밀집돼 있다. 리피강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강의 폭도 좁고 전체 길이도 좁은 강에 속한다. 강의 길이는 약 125km이며 강의 폭은 70~80m 정도로 한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폭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강을 건너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강이지만, 더블린 안을 흐르고 있는 리피강의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보행자 산책로가 놓여 있다. 4차선도 되지 않는 복잡한 중심가는 도로를 넓히는 대신 도로 옆에 보행자들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어 놨다. 햇살 좋은 날,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도심의 휴식 공간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