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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일까, 범죄일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40대 중년 남성이 10대 여고생과 동거를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면 말이다. 물론 폭행이나 강압이 없었다고 가정해보자.
사랑은 국경도 나이도 신분도 초월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잠자리를 할 권리도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이나 미성년자는 어떤가. 그들의 선택권도 존중해야 할까, 아니면 판단능력이 떨어지니 법으로 보호해주어야 할까, 그렇다면 몇 살부터 얼마나 보호해주어야 할까. 청소년의 정신적인 사랑은 허용하되 육체적인 사랑은 금지해야 할까. 의문은 끝이 없다.
하지만 고민은 이론에 그칠 수 없다. 법은 실제 사건에서 잣대를 들이대야 하고 법원은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과 성관계를 한 청소년의 판단과 선택은 법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가. 사랑인지 범죄인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애정(?)사건을 살펴보자.
40대 남성과 여고생, 동거에 출산까지 나진영(가명, 당시 42세)씨는 2011년 8월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자주 들렀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입원치료 중이던 박수지(가명, 당시 15세)양을 우연히 보게 됐다. 나씨는 키도 크고 예쁘장하게 생긴 박양에게 호감을 갖고 말을 건넸다.
"너, 연예인 해도 되겠다. 아저씨가 아는 사람 많은데 다리 놔줄 게. 번호 좀 알려줄래?" 몇 시간 뒤 나씨는 전화를 걸어 박양을 불러냈다. "아는 기획사에 연예인이 많다. 바람 좀 쐬자"고 했다. 그리고 나씨는 승용차 안에서 키스를 하려다 박양의 거부로 실패했다.
나씨는 다시 며칠 뒤 박양을 불러내 차에 태웠다. 그리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근처 주차장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그 뒤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고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몇 달 뒤 박양이 임신을 하게 된다. 당시 박양의 부모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아서 박양을 제대로 신경 쓰기 어려웠다. 박양은 임신 사실을 알고 가출한다. 그리고 나씨의 집에 머무르면서 사실상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미성년자의 성과 법률 |
성인이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은 수단으로 강제로 미성년자와 성적인 행위를 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문제는 합의나 동의를 한 성행위의 경우다. 미성년자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선, 13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관계는 합의에 관계없이 처벌을 받는다. 12살까지는 성행위를 동의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성인 남성이 12살 소녀와 합의하여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과 같은 수준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것을 '의제강간'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13세~18세 청소년과의 성적접촉이다. 이때는 동의가 있다면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청소년에게도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가가 있었거나 위계·위력이 동원되었을 경우엔 처벌된다. 예컨대 청소년에게 돈을 주거나 선물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으면 청소년 성매매로 형사처벌이 된다. 또한 직접적인 폭력을 쓰지 않더라도 속임수를 써서 착각을 일으키게 하거나 겁을 주는 방식으로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도 처벌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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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이 나씨의 집에 온 지 3주 정도 지났을까. 나 씨는 다른 형사사건에 휘말려 구속된다. 그때부터 박양은 거의 매일 나씨의 면회를 가고, 수시로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내주었다. 박양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집에 머물렀다.
박양이 출산한 뒤 부모와 주위사람들은 박양을 설득하여 나씨를 고소하게 했다. 나씨는 미성년자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가출도 박양이 스스로 결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주변 상황은 나씨에게 불리했다. 게다가 박양은 "나씨와의 만남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무려 27년, 박양은 나씨의 아들보다 겨우 두 살 많았다.
나씨는 "딸 같은 소녀에게 용서 못할 짓을 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보자. 관건은 성관계가 반강제적이었는지, 서로 동의를 했는지이다. 두 사람이 실제 연인관계였거나 연인관계가 아니었더라도 성관계 당시 서로 합의했다면 처벌하기 어렵게 된다.
1심과 2심 "사랑이 아닌 강간... 엄벌 마땅" 1심 법원(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 재판장 김기영)은 나씨의 주장을 전부 배척했다. 우선 처음 성관계를 갖게 된 상황을 생각해볼 때 박양이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15세 소녀가 불과 며칠 만에 중년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나씨의 갑작스런 강간시도에 제대로 저항을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박양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출하도록 종용하였다"고 지적하면서 나씨를 비난했다. 나씨의 태도로 볼 때 순수한 사랑도 아니라고 했다.
"나씨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였다는 박양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여 가출할 당시 길거리에서 알게 된 여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이성관계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속된 나씨를 위해 박양이 면회를 가고, 편지를 보낸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심은 공포심리 때문이라고 봤다.
"박양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고, 편지를 쓰지 않으면 박씨가 화를 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다. 면회와 편지만으로 연인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설사 성관계 후 애정과 같은 감정이 있었더라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재판부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박양의 말을 유력한 증거로 삼아 나씨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양형이유를 밝혔다.
"나씨는 이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있던 상황에서 자신의 딸 뻘인 박 양에게 접근하였다. 그리고 쉽게 관심가질 법한 연예인 이야기를 건네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후, 박양을 추행하고 강간하였다. 나씨는 자신의 행위가 사랑이었다고 주장하나 실은 일방적인 정욕의 해소 수단에 불과하였다. 나씨의 범죄로 박양은 출산까지 하게 되었고 아이를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아 현재 시설에 있다. 나씨의 범죄로 박양의 육체와 영혼뿐만 아니라 박양의 가정은 사실상 파괴되었다. 나씨는 자신의 죄에 맞는 엄한 형을 피할 수 없다."항소심(서울고법 제12형사부 재판장 민유숙)도 대동소이했다. 미성년자 강간과 미성년자 유인죄를 적용,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그나마 나씨에게 성범죄 전과가 없는 점을 감안하여 1심보다 3년이 줄어들었다.
1심과 2심을 종합하면 나씨는 승용차 안에서 여러 차례 박양을 성폭행했고, 박양이 임신하자 가출을 유도해서 자신의 집에서 계속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고 범죄란 뜻이다.
대법원 "폭력, 협박 인정 어려워" 무죄취지 파기 환송 형이 이대로 확정되는가 싶었지만 2014년 11월 대법원(주심 김신 대법관)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나씨와 박양의 진술이 엇갈린 상황에서 1심과 2심은 박양의 진술을 믿었지만 대법원은 박양의 말에 의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보았다. 대법원이 의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박양이 나씨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나씨가 구속되었을 때 박양은 거의 매일 면회를 가고 자주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박양은 "편지를 안 쓰거나 사랑한다는 내용을 적지 않으면 나씨가 화를 낼 것으로 짐작하고 거짓 감정을 편지에 적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면회나 편지의 횟수나 내용, 형식에 비춰보면 허위의 감정표현보다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편지가 형형색색의 펜과 스티커, 하트표시로 예쁘게 꾸며져 있기도 했다.
둘째,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나씨가 구속될 때까지 하루에도 수백 건씩 문자를 주고받았다. 박양은 나씨를 '오빠' '자기' '남편'으로 불렀고 연인 사이에나 주고받을 법한 '사랑한다' '보고 싶다'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내용이 문자에 자주 등장했다. 대법원은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나 강요로 보낸 문자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