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에 도장찍기 놀이를 하고 있다. 30분짜리 프로그램으로 준비했으나 10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김형배
순간 눈떠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아이 옆에 누워서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 버린 것이다. 원래는 아이들 잠을 재운 뒤에 학부모들과 그 날의 이야기를 나누는 '날적이'를 아이들별로 써야 했는데 그만 자버린 것이다.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한 아이가 있었지만 어서 자것을 재촉하면서 날적이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긴장해야 한다. 아직 일어날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 명이 일어나 부스럭 거리니 다른 아이들도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에게 조용히 책을 읽도록 했다. 그림 보는 것에 지친 아이들은 책을 가지고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부산스러워지니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버렸다. 나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오후 간식을 먹었다. 생협에서 만든 요구르트와 케이크를 아이들은 깨끗이 해치웠다.
이제 내가 준비한 활동을 아이들과 나누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아이들과 손수건에 도장찍기 놀이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각종 도장과 색깔 스탬프에 호기심을 보였다. 아이들은 열심히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손수건에 도장을 찍다보면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해야할 30분이 충분히 소화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10분이 지나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망고, 그만 해도 돼?" "마당에 나가서 놀아도 돼? 난처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활동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도장을 찍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일부를 마당에 내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교사가 마당에 있었기에 원하는 아이들을 마당을 내보냈다. 방에서 도장찍는 아이들을 보니 여자 아이들만 남았다.
여자 아이들이 훨씬 좋아하는 활동이었음이 드러났다. 여자 아이들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만든 반면 남자 아이들이 놓고 간 손수건을 보니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 아이들의 손수건이 더 이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남자 아이들의 작품이 훨씬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돼질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마저 도장찍는 것을 마무리 하고 마당에 나갔다. 마당에 나가니 이미 소꿉 잔치가 열렸다. 아이들은 각종 도구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몇 명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몇 명 아이들은 "벌레 발생"을 외치며 생물탐구에 열중이었다.
나는 모래놀이터 근처 한 켠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이들과 상대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학부모들이 하나 둘 아이들을 찾으러 왔다. 그렇게 나의 일일교사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일일교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 역시 그들만의 사회가 있었고,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함께 자라면서 가정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어린이집이 가지고 있는 보육 철학과 방향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우려가 무색하리 만큼 주변 환경에 익숙해져있었다.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안전 수칙들을 잘 지키고 있었다.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보육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것도 알게됐다. 실내에서나 야외에서나 교사들이 신경쓰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야외 활동 시 교사들이 갖게 되는 긴장감이란 상상 이상이다.
내 자식과 똑같은 아이들 7명을 데리고 집밖을 나선다고 상상해보면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체험해보지는 않았지만 각종 행정, 서류 업무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녹록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와 근무환경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봐주는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신뢰의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는 학부모님들에게 일일교사를 해보실 것을 적극 권장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볼멘소리 이전에 현실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는데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