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청소해서 먹고 살고 계시다는 평범한 얼굴의 삼촌들클린광산협동조합에서 일하시는 두 분. 앞에 계신 삼촌은 상임이사를, 뒤에 계신 삼촌은 노조대표를 맡고 있으시다.
강봉춘
꿈틀버스 다음 정거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내 고향 가래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의 삼촌들이었다. 삼촌들은 미화원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동산미화라는 민간위탁 청소업체에서 일을 하던 삼촌들은 업주가 짠 임금에도 장갑과 피복을 지원하지 않고 대화마저 거부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불만이 쌓였다. 특히 지저분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 분노가 아로 새겨졌는데 마침내 그 분노는 노조결성을 이루게 했다.
그리고 노조를 꾸린 뒤 민간위탁을 책임지는 행정서를 찾아 시위를 하고 업주에게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시위도 계속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날 무렵 이런 소식이 알려졌다. 함께하는 시민들이 늘어 그 분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렸다. 그런데 대화창을 열 줄 알았던 업주가 위장폐업을 해버렸다.
그래서 이대로 끝나는가, 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누군가 협동조합이 대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출자금을 댈 조합원들을 모으고 행정 지원책을 알아봤다. 그렇게 마침내 새 청소차를 구입했다. 다른 민간청소업체와 달라져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다들 열심히 일하고 주민들에게도 서비스했다. 더 재밌는 건 주변 청소업체들의 근무환경도 좋은 방향으로 개선됐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나 설득과 대화였다. 다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라 말 꺼낸 사람조차 확신하기가 쉽지 않았다. 2년 계약직이라는 서로의 상황은 새로운 결성을 맺는 것을 크게 방해했다. 그 기나긴 설득과 대화와 고민의 시간 끝에 14명 중 9명이 뭉쳐 결의한 게 지금 클린광산협동조합을 있게 한 첫 디딤발이었다. 삼촌들은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고, 방법을 찾아주고, 정책을 이어주는 좋은 공무원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