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바다출판사
..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손수 가꾼 정원이란, 특별히 사계절 내내 꽃이 가득 찬 공간이 아니다. 하늘에 들어찬 별처럼 찬란한 만개의 순간을 일 년에 며칠 정도만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소우주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인생에서 겨울은 좌절의 기간이다. 식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것도 새로운 비약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 취미란 게 대체로 그런 것 아닌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 (9, 24, 50쪽)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지었습니다. 왜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하는가 하면,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얻어야 했으니, 스스로 삶을 지어야 했습니다. 아기가 아니라면 누구나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드러눕지 않는다면 마땅히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건사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만 할 뿐, 스스로 삶을 짓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지구별 거의 모든 사람이 '전문 일자리'에 얽매일 뿐, 스스로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기자나 의사나 교사나 운전사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법관이나 경찰이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일꾼과 같은 '한 가지 일만 하는 전문가'로 있을 뿐, 밥이나 옷이나 집을 손수 지어서 가꾸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오늘날에는 참말 거의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만 해서 돈을 쓰기만 하는 하루를 보냅니다. 흙을 만질 겨를이 없고, 흙을 헤아릴 틈이 없으며, 흙을 밟거나 흙내음을 맡거나 흙숨을 쉴 자리가 없습니다.
.. 산길에서 만나면 "아, 꿩이 있구나."로 끝나겠지만, 우리 집 안이라는 너무나 친근한 장소에서 꿩을 목격하자 감동과 흥분이 뒤따랐고, 깊게 교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일었다 … 여름 정원을 운치가 없는 지루한 공간이라 규정한 것은 너무 조급했다. 무의미한 단색으로 유린된 가련한 공간으로 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 평화를 넘어 타락의 소굴로 변한 이 나라는 정신은커녕 영혼까지 통째로 뺏길 위험에 처해 있고, 어느새 따라야 할 모범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 있고, 자신을 계속 압박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기기만의 재능이 뛰어난 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 (34∼35, 81, 92쪽) 마루야마 겐지님이 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바다출판사, 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님이 누리는 시골살이 가운데 한 토막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곁님이랑 둘이 조용히 깃들어서 살며 누리는 이야기를 곰곰이 들려줍니다. 다만, 곁님 이야기를 이 책에 적지 않습니다. 오직 마루야마 겐지 한 사람이 누리고 바라보며 생각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라는 책은 어떤 이야기를 적은 책일까요? 마루야마 겐지님은 '정원 일'을 적었다고 밝힙니다. 그러면 '정원'은 어떤 곳일까요? 일본사람은 '庭園'이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한국말로 옮기면 '뜰'이나 '꽃밭'입니다. 그러니까, 마루야마 겐지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350평짜리 '뜰'이나 '꽃밭'을 가꾼 열두 달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