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고택의 뒷뜰입니다
강미애
김정희 선생님은 1830년 생부 김노경의 윤상도 옥사에 연류되여 고금도에 유배됐습니다. 곧 풀려 났으나 헌종 1840년에 다시 윤상도의 옥사에 관련 제주도에서 8년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듬해에 다시 예송논쟁으로 함경북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에 풀려났다고 전해집니다.
비록 김정희는 감금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13년이라는 유배생활을 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며 그의 학문의 깊이와 수양에 정진했습니다. 헌종184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8년간 제주도 유배생활 동안에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한국의 서법을 연구해 그만의 독창적인 필체 추사체를 탄생시켰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학문연구에 정진한 그의 정신력과 숭고한 업적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외에도 금석학 연구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는 등 서예, 시문, 묵화를 남겼으며 난초, 대나무, 등 산수화를 잘 그렸습니다. 추사 고택 근처에 있는 추사 기념관에 가면 그의 업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가 출가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정희의 집안에는 대대로 명필이 많았다고 합니다. 과거에 급제한 김정희는 서울에 있는 그의 증조부 월성위궁에서 생활했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34살 되는 해에 생모가 돌아가시자 비탄하여 고향 예산으로 내려와 한때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추사고택에서 가까운 곳인 화암사에서 불교에 정진하며 수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추사 김정희는 운 좋게도 자제군관의 직책으로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건너가서 연경의 학자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 그의 학문 활동에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청나라에서 고증학과 금석학을 배운 김정희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판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