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로 떠나는 황금빛 여행 리히트호펜이 의도했든 아니든,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이 길들에 낭만적 성격을 불어넣어주었다
정효정
황금빛 사막, 끝없이 늘어선 대상의 낙타들, 오아시스, 이국의 미녀들…. 제임스 일로이 플레커의 시 '사마르칸트로 떠나는 황금빛여행'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인은 한 번도 중앙아시아에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시는 오랜 세월 동안 실크로드를 수식하는 관용구나 관광 슬로건으로 쓰였고, 실크로드에 환상을 가진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깃발이 돼 나부꼈다.
사실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다. 비단과 사치품들이 로마와 중국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중개상을 거쳤다. 오아시스에 점점이 박힌 나라들은 중계무역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고, 그 문화가 다시 동으로 혹은 서로 퍼져 나갔다. 실크로드는 그 점과 점이 만나 길이 된 셈이다. 점을 따라 사방팔방 이어진 길들은 무수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보따리, 그 중심에 사마르칸트가 있다.
긴 두개골의 비밀 사마르칸트. 여행자들의 환상 속 오아시스 왕국이다. 이 도시의 푸른 돔은 둔황의 사막과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오래된 도시는 한때 소그드인의 나라인 소그디아나의 수도였다. 당시 이름은 아프라시압이었다.
사마르칸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아프라시압 언덕을 방문할 수 있다. 한때 요새였던 옛 도성이다. 하지만 바싹 마른 황야에 다 무너진 진흙 벽돌만 남아있을 뿐이다. 언덕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아래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건물 기둥, 골호(죽은 자의 뼈를 담는 그릇), 철제 칼,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테라코타 신상 등 소그디드인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7세기 후반에 그려진 채색벽화다. 2미터 높이의 거대한 벽화에는 사마르칸트 왕을 알현하는 각국 사신들이 그려져 있다. 사실 빛이 바래서 형태만 남아있지만, 그 줄 끝에 조우관을 쓴 사내 두 명의 모습이 보인다. 시안에서도, 둔황에서도 만났던 한반도인들이다. 시기로 보아 이 먼 곳까지 사절을 보낸 고구려인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