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안내문과 광고물을 제외하고는 비어 있는 교내 게시판의 모습.
모진수
"어떻게 1년 만에 학과를 평가하고 존폐를 결정합니까" 타 학과로 전과를 선택한 학생들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자리에 모인 8명 중 A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산업공학과와 보건행정학과, 신소재공학과 등으로 전과한 상태다. 1·2학년 54명 중 몇몇은 중국어과나 사회복지학과, 심리학과 등 기존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으로 전과하기도 했다.
산업공학과로 간 B(21)씨는 "그나마 보건과학대학 내에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물리치료학이나 간호학, 임상병리학 등은 전과를 허용해주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학교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든 학과로 전과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의학·치의학·한의학 및 보건과학대학 일부 전공 등은 별도의 자격이나 허가를 필요로 해 전과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예 '새로운 계열과 전공'을 택해야만 했던 셈이다.
학생들은 "새로 옮긴 학과에서 성적이든, 학교생활이든 제대로 적응한 친구는 단언컨대 전혀 없는 수준이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행정학과로 전과한 박민우(21)씨는 "생명의료정보학과는 이공계지만 보건행정학과는 인문계라 학과 내용이 아예 다르다보니, 2학년인데도 전공필수 과목을 듣지 못하고 그쪽 1학년과 함께 기초 교양 과목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과한 이후'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초 수업을 듣지 않으면 전공 내용을 따라가기조차 벅차고, 아예 졸업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강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수업에는 이들의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평가기준 마련 등의 배려조차 없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한 C(21)씨는 "한 수업에서는 일정 점수가 넘으면 절대평가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기준은 전공을 새로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부 학과로 전과한 1학년생들은 대부분 F 학점을 받은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민우씨는 "어쩌면 추가 학기까지 1년 더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남학생의 경우에는 군대에서 보낼 2년까지 고려하면 가뜩이나 빠듯한 상황인데, 지난해 생명의료정보학과에서 공부한 1년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자조했다.
마치 학원 다니는 기분... "이러려고 대학 온 게 아닌데" 생명의료정보학과 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업공학과로 옮긴 D(21)씨는 "보통 2학년쯤 되면 대부분 친해진 사람들끼리만 몰려다니지 않느냐"며 타 학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학회장 호진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조별 과제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 친한 사이니까, 저희는 의견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고 눈치 보기에만 바쁘죠."자리에 모인 8명 중 부스 행사를 비롯한 축제에 참여했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 그대로 '낄 곳이 없어서'였다. 심지어 학과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못한 학생까지 있었다. D씨는 "타 학과로 그나마 많이 전과해봤자 대여섯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학과에서는 한두 명밖에 안 되니 그쪽에서도 충분히 생각해주고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저 학원처럼, 학교에 가면 가만히 앉아 수업만 듣다가 도로 하교하는 것이 이들 일과의 전부였다. 식사도 한때 생명의료정보학과였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먹거나, 그마저도 시간표가 맞지 않으면 혼자서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학생은 생명의료정보학과와 전과한 학과 사이 어딘가에서 '양다리 걸친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만남에서 대학 측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진행하는 대학구조개혁과는 무관하게, 대학 자체적으로 모집을 중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며 수요 예측 실패를 비롯한 대학 측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대신 학생들의 성에 안 찰지언정, 모집 중지 결정 직후부터 학생 54명 전원에 대해 1:1 진로상담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시간표를 파악해, 옮겨가는 각 학과의 학과장 및 교수들에게도 일일이 편지를 보내거나 개별연락을 취해 '잘 챙겨달라'고 얘기해둔 상태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막상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보건행정학과로 간 E(21)씨는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든 불이익을 안 주겠다고 했지만 수업을 하고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담당 교수들인데, 아예 우리 중 몇 명이 이 과로 옮겨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교수들도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너희들 새로 왔구나. 그래, 알았다"는 교수의 한마디만 듣고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모집 중지 결정 당시, 촉박했던 만큼 시간을 쪼개 주말까지도 진행했다는 진로상담도 마찬가지였다. 민우씨는 "이미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하게 된 상황에 상담이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