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무죄 확정에 기뻐하는 지인들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던 강기훈 씨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의 이부영 전 의원과 함세웅 신부, 김상근 목사 등 회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기뻐하고 있다.
유성호
정확히 24년 전, 김기설씨는 "폭력살인만행 자행하는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인 채 투신했다. 경찰의 집단 구타에 명지대학교 신입생 강경대씨가 숨진 뒤 잇따른 '분신 정국'의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망 직후, 검찰은 김씨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며 강기훈씨를 지목했다. 강씨는 결백을 항변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에게 '자살방조죄 유죄'를 선고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사 정리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강씨는 재심을 청구할 기회를 얻게 된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김기설씨의 새로운 필적 자료를 바탕으로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강씨는 이듬해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의 더딘 결정으로 좀 더 기다려야 했다. 2009년 서울고법은 그의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의 항고로 강씨는 대법원까지 가서야 어렵게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2월 13일, 서울고법은 마침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는 다시 한 번 국과수에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진실·화해위 조사 때와 비슷했다. 국과수는 김기설씨의 필적 자료들이 정자체와 흘림체가 섞여있어 면밀한 비교분석이 어렵지만, 필체와 상관없이 김씨만의 특징이 나타난다고 했다. 국과수는 '본인이 직접 유서를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분명 '유서대필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24년 전 이 사건이 정국을 뒤흔들었고, 강씨 본인은 오랫동안 주홍글씨를 견뎌야 했던 점을 볼 때 다소 황망한 결과이기도 했다.
"유서대필이 아니라 조작사건... 국가의 책임 묻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