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으면서 풀놀이
최종규
페트라 켈리님이 쓴 <희망은 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이 우위에 놓인다면 인간은 더 이상 미움과 경멸에 사로잡혀 사물과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희망은 있다> 본문 178쪽 중에서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넌지시 흐릅니다. 독일에서 '녹색당'을 함께 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페트라 켈리님은 정치·환경·평화운동 어느 곳에서나 늘 '사랑'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모든 운동과 정치와 교육에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머스마'와 '가시내'가 살을 섞거나 짝을 짓는 몸짓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숨결이 '사랑'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사람이 풀과 나무를 사랑하고, 꽃과 나비가 사람을 사랑하지요.
요즈막에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가 정부 입김에서 불거집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조차 안 다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불거지건 말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이웃과 동무는 초등학교에 다녀요. 이웃 아이와 동무한테는 참으로 버거운 짐입니다.
나라(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언제나 정책을 세우거나 내놓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언제나 '사랑'은 안 살핍니다. 복지나 문화나 경제 같은 이름은 씌우지만,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사랑'으로 정책을 꾸리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겠다고 밝힐 수 있을까 궁금해요.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중·고등학교를 입시지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요. 푸름이와 젊은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오늘날 대학교를 취업지옥으로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요.
한자를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기에, 무엇보다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안 배웠으면, 수학이나 과학도 제대로 못 배웁니다. 어떤 말로 배우겠어요? 못 배우지요.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영어나 한자도 비로소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
나라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느냐 마느냐 다툼을 일으켜서는 안 되지요. 초등학교 교과서를 '한국말로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가꾸는 일'을 해야지요. 시험공부만 시키는 교과서가 아니라 삶을 사랑스레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책이 되어야 할 교과서입니다.
숲의 노래를 품고, 새로운 꿈을 꾸다